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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태종의 한양 재 천도

2012-12-08

조선을 건국한 직후 태조 이성계는 도읍지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이후 왕위에 오른 정종은 수도를 개성으로 옮기는데 정종에 이어 왕권을 잡은 태종은 다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다. 현재까지 서울이 수도가 되게된 발판을 마련한 태종의 천도를 중심으로 그의 리더십을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개성-한양-개성, 다시 한양으로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고려의 5백년 도읍지인 개성에서 1394년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다. 이후 태종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정종은 개성에서 주로 자랐고 모든 환경이 개성이 익숙한 탓에 다시 수도를 개성으로 옮긴다. 그러나 과감한 개혁 정치를 추구한 태종을 즉위 후 개성이 자신의 정치를 펼치기에는 여러 환경이 안 좋다고 판단하고 한양으로 다시 수도를 옮길 것을 결심한다.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이 반발했지만 이를 설득시켜 마침내 1405년에 다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다. 이 과정에서 태종의 리더십이 발휘되는데 태종은 신하들에게 적극적으로 한양의 장점을 설파하고 천도가 먼 미래를 바라본 장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역설한다.

사방이 산에 둘러싸인 지리적 요충지
태종이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방어가 유리하다는 점이다. 또 한강이 중심으로 흐르고 서해 뱃길 이용도 수월해 세곡을 운반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췄다는 점도 작용했다. 산과 강이 조화돼 도시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점친 태종은 조선의 미래를 위해 한양 재 천도가 꼭 필요함을 직시하고 과감하게 천도를 감행했다.

경복궁 재건과 청계천 공사
태종의 업적 중 하나는 경복궁의 재건이다. 정도전의 주도로 건설된 경복궁은 왕정을 펼치기에는 협소한 편이었다.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정치를 추구했기 때문에 성대한 궁궐의 건설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왕권 강화를 추구한 태종은 즉위 기간 중 경복궁 재건에 힘썼는데 특히 경회루 건설이 돋보였다. 연못을 가운데로 건설된 경회루는 신하들과 함께 연회를 열며 왕의 권위를 과시할 좋은 장소였다. 또 청계천 건설도 태종의 치적 중의 하나인데 한강 범람으로 늘 홍수에 시달리는 수도 한양의 홍수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선 배수 시설의 중심인 청계천 건설이 필요함을 주시하고 많은 인력을 동원해 청계천 건설를 완성하였다. 오늘날 서울을 관통하는 청계천의 기반이 이 때 마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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