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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태종의 후계자 선정

2012-12-15

보통 왕의 후계자는 적장자가 되는 것이 원칙인데 조선 시대 들어 이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런 것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 즉 태종도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태종 자신도 후계자 선정에 원칙을 어기고 장자를 세자에서 몰아내게 되는데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태종의 의중에 대해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양녕대군과의 갈등
태종의 장자 양녕은 일찌감치 태종의 후계자로 지목돼 세자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싫어하고 장성해서는 게으르고 여색을 밝히는 등 궁궐 내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양녕대군을 바라보는 태종의 마음에는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태종을 14년간 세자 자리에 있던 양녕 대군을 폐위하고 세자 자리에 충녕, 곧 훗날 세종을 앉힌다. 양녕 대군에 대한 태종의 실망과 충녕을 세자에 칙봉하기까지의 과정은 태종실록이나 열려실기술 등 실록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원칙보다 능력 중시한 태종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장자 대신에 막내 아들인 방석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세자에 앉혔다. 이에 불만을 품은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장남 방우가 살아있었으면 새로운 세자에 올렸겠지만 이미 죽은 뒤라 둘째인 정종을 왕위에 오르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태종은 적극적이고 과감한 성격으로 대를 위해선 소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다. 조선의 앞날을 생각하고 또 자신이 퇴위한 후 왕정을 생각할 때 장자인 양녕대군이 후계자로 왕위에 오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게으르고 학문도 싫어하고 또 국사에 관심이 없었다. 그에 비해 충녕대군은 총명하고 우애있고 사려가 깊어 훌륭한 왕이 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 마침내 태종은 양녕을 몰아내고 충녕을 선택한다.

세종 즉위 후에도 국정에 간여
태종은 세종이 즉위한 후에도 외척 세력의 왕정 간섭을 견제해 위험 인물을 직접 척결하고 이종부를 시켜 대마도를 정벌하는 등 군사 외교 분야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였다. 태종은 자신의 후계인 세종이 편안하게 왕정을 펼칠 수 있도록 많은 보좌를 해 실제로 세종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조선의 발전에도 기여한 공이 크다. 태종의 후계자 선정 과정을 보면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나라의 먼 미래를 내다본 현실적인 판단을 따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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