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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종의 영토 확장

2013-01-12

한글 창제, 과학 문화 발전을 이끈 세종의 공적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세종을 생각할 때 학구적이고 문인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과감한 결단력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또 무인의 기질이 뛰어난 아버지 태종의 피를 이어받은 세종에게도 무인적인 면모가 있었다. 세종의 영토 확장 노력에 담긴 카리스마를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고려 후기 두만강 경계까지 확장
고려 후기 공민왕은 영토 회복 노력으로 북진 정책을 펼쳐 두만강 경계 지역까지 국토를 확장하였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고 영토 확장은 중단된 상태였는데 두만강 지역까지 여전히 조선의 영토로 남아있었으나 압록강에서 두만강에 이르는 지역엔 백성들이 거주하지 않고 방치돼 주인없는 땅처럼 남아 여진족 등의 침략이 빈번하였다.

경원을 최전선으로 지정
세종은 집권 초기부터 선조들이 물려준 땅을 수호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영토 확장의 첫 실천으로 후방에 있었던 전선 사령부, 즉 도호부를 두만강 위에 있는 경원 지역으로 옮기고자 하였는데 이에 대한 신하들의 반대가 심했다. 신하들의 의견은 도호부를 최북방인 경원으로 옮길 경우 지키는데 매우 힘이 든다는 것이 주된 이유로 보다 남쪽에 있는 용성을 도호부로 하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함길도 관찰사였던 ‘정초’의 발언을 보면 “강원도에서 경원까지 가려면 15일 이상 걸리는데 가는 동안 군인, 일반인, 말들이 다 지쳐 효율적이지 않다. 경원보다는 용성에 도호부를 설치하는 것이 적합하다.”라는 의견을 펼친다. 그러나 세종은 힘들더라도 전선을 최 북방으로 정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경원을 도호부로 정한다.

여진족의 분열로 영토 확장 기회
마침 북방에 거주하며 자주 조선 땅을 침략했던 여진족의 수장과 아들이 동시에 사망하는 사건이 생기자 세종은 이를 영토 확장의 좋은 기회로 보고 적극적인 북방 정책을 추진한다. 최북단 두만강까지 국경선을 확정한데 이어 백성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킨다. 인근 백성들에게 세제 혜택과 일자리 부여 등의 혜택을 줘 정착하게 하는데 이로 인해 그간 빈 땅으로 버려져 있던 북방 지역에 활기가 넘친다. 또 최윤덕 장군에게 백두산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해 백두산 일대의 영토 확장에 힘쓴다. 사려 깊고 문인적인 세종에게 강인한 무인의 카리스마를 영토 확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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