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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태종 이방원의 활약

2012-11-24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결정적인 보좌를 한 인물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인 이방원이다. 결단력과 과감성으로 장애되는 인물들을 처형하는 악역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방원의 조선 건국 당시의 역할을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시대 변화 읽는 식견
태조에게는 모두 8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방원은 다섯 번째 아들로 유일하게 문과 과거에 급제할만큼 총명하였다.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조선 건국 전부터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났다. 고려말 공민왕은 개혁을 추구했으나 시해되었고 우왕, 창왕은 권문세가에 둘러싸여 제대로 된 왕정을 펼치지 못해 나라가 피폐했고 백성들의 삶은 곤궁했다. 이방원은 태조의 건국을 도우면서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는 것이 새 왕조가 추구해야할 가장 큰 가치임을 늘 간직하였다.

태조와 함께 어려움 극복
조선 건국 초기 이방원은 적극적으로 태조 이성계를 도와 건국의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힘썼다. 고려말의 학자이자 정치의 중심이었던 정몽주를 장애 인물로 보고 과감하게 처단한 것도 이방원이었다. 정몽주는 수시로 태조의 상황을 엿보며 반역을 노렸고 이방원을 이를 간파하고 정몽주 제거를 계획하였다. 태조가 말에서 떨어져 다치는 사고가 있자 정몽주는 태조를 병문안하며 염탐하였는데 이를 기화로 이방원은 정몽주를 제거하기로 하고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가는 정몽주를 자객을 보내 살해한다. 이방원의 판단은 정몽주를 제거하지 않으면 앞으로 조선 건국에 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선 건국의 주역 정도전 살해
이방원은 조선의 건국을 주도했던 정도전도 살해한다. 정도전은 조선의 청사진을 직접 기획하고 추진한 인물로 이성계의 총애를 받았다. 차츰 정도전의 세력이 커지자 이방원은 정도전을 경계했는데 정도전은 신하들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건국을 주장했고 반면 왕권을 약화시키려는 생각을 갖고있었다. 이성계는 어느 정도 공감했지만 이방원의 판단은 달랐다. 왕권이 약화되면 권력이 정도전 중심의 신하들에게로 가게된다고 판단한 이방원은 1393년 마침내 정도전의 목을 벤다. 정도전을 처형하고 이복 형제들까지 처형한 이방원은 이후 그의 형 이방과을 왕위에 올린다. 바로 정종이다. 자신이 바로 왕위에 오르지 않은 것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권력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발전을 위한 것임을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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