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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집현전을 통해 본 세종의 리더십

2013-01-26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많은 공적을 남긴 왕은 단연 세종이 꼽힌다. 자주주의 민본주의 또 실용주의를 기치로 학문과 문화의 황금기를 이룬 세종 대왕은 집현전을 학자들을 육성하고 그들이 만든 정책으로 나라를 이끄는 중심적인 기관으로 발전시켰다. 세종의 리더십을 집현전을 중심으로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명칭은 오래전부터
집현전이란 명칭은 고려 인종 때부터 사용돼 왔고 조선 정종 때도 부활했으나 이름만 있을 뿐 집현전의 역할은 거의 없어 유명 무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세종이 집권하면서 집현전에 우수한 학자들을 대거 등용해 그들이 학문 연구에 매진하도록 격려하고 나라의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는 국가 자문기구의 역할과 중추 학문, 문화 연구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젊고 유능한 학자들 대거 등용
세종 때부터 조선 시대에 집현전을 거쳐간 학자들은 96명이었는데 그 중 정인지 등 과거 장원한 인물이 16명, 2등6명, 3등 11명, 4 등 7명 등 대다수의 학자들은 학문에 조예가 깊고 총명한 젊은 학자들이었다. 이들 학자들은 집현전에서 늘 학문 연구에 몰두하고 임금의 자문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 일종의 국가 자문기구라 하겠다. 세종을 이들이 국가에 필요한 정책들을 꾸준히 개발하도록 해 개발된 정책을 적극적으로 국정에 반영했다.

경복궁 수정전 자리
집현전의 위치는 지금의 경복궁 수정전 자리인데 근정정에서 왼 쪽 경회루 남쪽이다.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과 신하들을 대하는 근정전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는데 그 만큼 항상 왕의 가까이에 두고 수시로 자문을 구하던 왕의 직속기관이었다. 집현전과 관련된 세종과 신숙주와의 일화가 있다. 어느 겨울 추운 날 신숙주가 집현전에서 연구를 하다 잠이 들었는데 그 앞을 지나던 세종이 보고 들어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용포를 덮어주고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신숙주은 임금의 용포를 보고 깜짝 놀란다. 말없이 신하에게 애정을 전한 세종의 은덕에 감격한 신숙주는 이후 충심으로 세종을 보좌했다 한다. 이렇듯 세종의 리더십은 인재를 발굴하고 인재들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또 지원한다는데 그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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