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역사

세종의 형제에 대한 배려

2013-02-02

세종은 조선 최고의 왕으로 다양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이끌었는데 왕위에 오른 후에도 형제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배려로 따뜻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세종과 형제들과의 관계에 대해 조명한다.

양녕 대군 축출과 세종의 세자 책봉
세종의 아버지 태종에겐 아들이 네명 있었다. 양녕, 효령, 충녕, 성령. 관례에 따라 가장 맏인 양녕을 11세 때 세자에 책봉했다. 그러나 양녕의 행동은 태종에게 늘 실망스러웠다.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일으킬만큼 치밀하고 과감한 성격인 태종의 눈에 양녕은 결점 투성이었다. 학업에도 게으르고 정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 반해 태종의 마음에 드는 아들은 셋째인 충녕, 즉 세종이었다. 충녕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고 매사에 빈틈이 없고 또 포용력도 있었다. 태종은 마침내 결단을 내리고 1418년 양녕을 세자 자리에서 몰아내고 충녕을 세자에 앉혀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 태종은 가장 현명한 아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음으로써 자신의 사후에도 조선의 발전을 이어가길 바랐던 것이다.

둘째 효령도 한 때 야심
기록에는 둘째인 효령도 한 때 세자가 될 야심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된다. 양녕이 태종의 눈 밖에 난 사실이 대궐 안에 소문이 퍼지고 양녕이 미친 듯 방황하자 효령은 곧 양녕이 세자 자리에서 쫒겨날 것을 예측, 자신이 세자 자리에 오를 것을 대비해 글공부에 전념한다. 이 모습을 본 양녕이 효령에게 태종의 마음이 충녕에게 있음을 알려주자 불교에 심취해 있던 효령은 그 길로 대궐을 떠나 절로 들어간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야인으로 살면서 효령은 90세 이상 편안하게 장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형제들에게 각별한 애정
양녕이 세자에서 축출 당할 때 억울한 심정이 많았지만 양녕은 동생 세종의 총명함을 인정하고 순순히 자리를 물러난다. 효령도 소리없이 자리를 비우고.... 이런 형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 세종은 즉위 후 형들을 깍듯이 예우한다. 신하들이 양녕에 대해 비난을 할 때에도 세종은 이를 무시하고 양녕을 자주 찾아 뵙고 끝까지 잘 모신다. 친척들도 자주 불러 잔치를 열고 담소를 나누는 등 형제들과 친척들에 대한 세종의 배려는 어느 왕 보다도 각별했다. 이런 각별한 대우로 세종이 즉위할 동안 형제들이나 친척들에 의한 불만이 표출된 적이 거의 없었다. 왕으로서 따뜻한 배려가 형제들이나 친척들을 감화시켜 항상 세종에게 감사하며 세종의 뜻을 받드는 자세를 지킬 수 있었다.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