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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종의 사가독서(賜暇讀書)

2013-02-09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설립해 그 곳을 중심으로 유능한 학자들을 양성해 학자들이 학문에 전념하고 좋은 정책들을 많이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집현전 학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제도로 사가독서제가 있는데 세종의 리더십을 느낄 수 있는 이 제도에 대해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학자들에게 재충전의 시간
집현전이 세종 때 정책을 만들고 학문을 연구하는 중심처로 발전하면서 유능한 많은 학자들이 장기 근무하였다. 정찬순은 18년, 최만리는 18년 신숙주 10년 등 오래동안 집현전에서 학문에 전념하는 학자들이 늘면서 승진이 잘 안되는데 대한 것 등 불만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점을 간파한 세종은 이들 학자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부여하는 ‘사가독서제’ 즉 독서하면서 한가로이 보낼 시간을 부여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오늘날 사원들에게 주는 휴가, 연수 등이 이 제도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주로 가까운 절로 휴가 보내
학자들의 독서를 위한 휴가는 3개월 정도로 주로 서울 인근의 한적한 사찰로 가곤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이 초기까지만 해도 불교에 대해 배타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절이 한적해 독서하기에는 좋지만 도서관처럼 도서가 많은 것도 아니고 불편한 점들도 있었다. 이에 성종 때는 세종 때 만든 사가독서제를 발전시켜 용산에 있는 작은 암자를 개조해 20 평 정도의 서늘한 마루가 있고 따뜻한 방이 있는 쾌적한 ‘독서당’을 만들었다. 동호대교 북단에 만들어 ‘동호당’이라고 했는데 남쪽으로는 지금의 압구정까지 독서당에서 공부하던 학자들이 유람을 했다고 한다.

350여 년간 320여명 사가독서
세종에 시작된 사가독서제는 영조 때까지 320여 명의 학자들이 휴식과 재 충전을 위한 사가독서를 즐겼으며 그들이 이용하던 독서당은 많은 유능한 학자들의 회동 장소로도 이용됐다. 이후 홍문관 대제학이 되려면 반드시 독서당을 거쳐야 한다는 묵시가 있을만큼 독서당의 위상이 높아졌다. 왕도 학문에 열중하는 학자들을 위해 특별 배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이 곳에는 항상 왕이 보낸 궁중 음식들이 넘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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