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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간 세종

2013-02-16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집현전을 만들어 많은 학자들을 육성해 조선의 교육, 문화,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등 가장 업적을 많이 남긴 왕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슬픈 가족사가 있고 질병으로 고생하는 등 아픔이 많은 것으로 기록된다. 인간으로서 세종이 겪은 아픈 사실들을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와 함께 조명한다.

장인 처형 등 아픈 가족사
세종이 즉위할 당시 아버지 태종은 상왕으로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세종 즉위를 알리러 명나라로 가는 사신으로 세종의 장인이 선정돼 떠났다. 가는 길을 축하하는 향연 등이 너무 화려했고 세종의 장인으로서 심원은 권세를 믿고 방자한 태도를 보였다. “세종이 즉위했으니 상왕보다 왕이 중요하다”고 소문을 내는 등 태종의 심기를 건드렸다. 마침내 태종은 심원이 돌아오자마자 그를 처형하고 그의 부인 안씨를 노비로 격하시킨다. 세종은 태종 사후에도 장모인 안씨를 복관시키지 못하고 8년 뒤에야 복관시킨다. 장인인 심원에 대해서는 세종 사후 문종이 복관시킨다. 태종의 권세 때문에 왕이면서도 자신의 뜻과 달리 장인, 장모를 내쳐야 하는 아픔을 감내한다.

자식들과도 생이별
세종은 소원 왕후 사이에 18남 4녀를 뒀다. 아들 중 문종과 수양대군이 왕에 올랐다. 그러나 5째와 7째 아들은 세종보다 먼저 죽었다. 또 맏딸인 정소공주는 13살 때 죽었는데 세종은 맏딸을 워낙 총애했다. 천성이 착하고 총명했던 정소 공주가 죽자 세종은 너무 슬픈 나머지 염을 못하게 하고 시신을 끌어안고 친히 제문을 썼다. 소원 왕후도 세종의 서거 보다 4년 전인 1446년에 죽어 세종의 말년이 더욱 쓸쓸했다. 심적으로도 약해져 불교에 심취해 궁중에 내불당을 만들고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등을 널리 보급했다. 유교를 숭배하던 당시의 학자들의 반발도 샀다.

많은 질병으로 고생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앓은 50여종의 질병에 관한 기록들이 있다. 20대 후반에는 두통, 30대 후반에는 풍, 40대 후반에는 안질과 소갈증 등 많은 질병에 시달렸다. 말년에는 병이 심해져 수렵도 하기 어려웠다는 기록이 있다. 가족적으로는 많은 슬픔이 그리고 스스로 많은 질병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많은 발전을 성취한 세종의 업적이 그래서 더욱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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