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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건국 초기 태조 왕건의 정책

2013-06-22

고려 왕조의 특징은 개방성과 다원성이다.
건국 초기 태조 왕건은 지방 호족들을 규합하는 노력을 하는 등 화합과 조화 정책을 추구했다. 무력으로 장악해 중앙의 권력을 강화해온 이전 왕조하고는 다른 모습이다.
건국 초기 태조 왕건의 화합 정책을 중심으로 국민대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얘기를 나눈다.

혼인 정책 등으로 지방 호족들과 화합
건국 초기 태조 왕건은 지방 호족들과의 화합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왕족들과 지방 호족 자녀들과의 혼인으로 결속을 강화하고 지방 호족들 중 공이 있는 인물들에게는 성씨와 본관을 부여하는 등 지방 호족들의 환심을 사는 정책을 추진했다.
고려 건국 전 견훤과의 안동 전투에서 왕건을 도운 공을 세운 신라의 대상 김행에게 안동 권씨라는 본관과 성을 부여해 그 지역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했다. 왕건의 정책은 지방 호족들을 최대한 우대하고 본인은 낮춘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지방 호족들에게 자율성 부여
왕건은 지방 호족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을 부여해 지역을 통치하도록하고 또 책임 또한 질 것을 요구했다.
중앙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명령만을 하달했던 지난 왕조와는 확실히 차별되는 정책이었다. 태조 왕건의 이런 정책으로 초기 지방 호족 세력이 강화됐다.

중국의 문물 적극적으로 수용
대내외적으로 개방 정책을 추진한 태조 왕건은 외국과의 교류를 활발히 했는데 특히 중국으로 부터 많은 문화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좋은 제도도 받아들여 고려 왕조에서 시행했다. 과거제도도 적극적으로 수용해 많은 새로운 인재들을 등용해 기존 정치 세력이 교체됐다. 3성 6부의 행정 체계와 2군 6위의 군사 체계도 당시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다.

조화와 개방 속에 쇄신
조화와 개방으로 상징되는 고려 왕조 시기에는 적극적으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개혁과 쇄신을 추구했다.
새로운 인재들을 등용하고 지방 호족들에게는 자율권을 부여하면서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고 외국으로부터 좋은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던 것이 고려가 부흥한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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