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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후기 사회

2013-07-13

고려 사회를 무신정변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고려 사회의 흐름을 보면 전기와 중기, 그리고 후기로 나누는 것이 타당하다. 어느 시점부터 고려의 후기라고 볼 수 있으며 또 고려 후기의 특징은 무엇인지 국민대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원간섭기에서 고려말까지
여러설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원간섭기에서 고려말까지를 고려 후기로 보고있다. 원간섭기라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사실은 공식적으로 1274년부터 1351년까지 약 80년간 원나라가 고려를 지배한 시기이다.
고려의 자존심을 고려해 간섭기라고 하는 것이다.
고려는 몽고에 굴복해 1259년에 강화 조약을 맺고 실제적으로 1260년부터 원나라의 쿠빌라이 왕조가 고려를 지배했다. 약 100년간 실질적으로 원나라가 천자국, 고려가 제후국으로 주종 관계가 계속됐다.

원 지배하에 고려왕 즉위와 복위
원나라 지배 시기에 고려왕들의 이름은 주로 충자로 시작된다.
충렬왕, 충선왕.. 등. 공통된 특징은 이들 왕들이 즉위했다가 원나라의 명령으로 폐위되고 또 다시 복위되는 중조 현상이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원나라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고려의 왕들이 원나라의 명령에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원나라의 지배 하에서도 고려는 고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사회, 문화의 본질을 지키려는 노력을 한 흔적들이 많다.

고려 후기는 개혁의 시기
원나라 지배 시기부터 고려말까지 이어지는 고려 후기의 화두는 개혁이다. 무신 정변까지 사회적, 정치적으로 많은 모순을 안고 있던 고려는 개혁의 필요성이 절실했고 고려를 지배한 원나라도 고려에 대해 개혁을 원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고려의 개혁이 이뤄진 시기이다.
원나라는 고려에 대해 많은 변화를 요구했는데 대표적인 개혁 요구로는 고려의 국왕 의식 때 만세를 부르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다. 만세는 천자 의식 때만 있는 것인데 제후나라에서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지방의 백성 수에 비해 관리와 관청 수가 많다고 줄이라는 명령을 했다. 지방 관리들의 백성 착취를 간파하고 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지방 백성들의 불만이 높아져 민란이 발생할 경우 원나라에도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민왕 때부터 본격적인 개혁
원간섭기에 고려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러나 개혁의 방향과 내용이 구체화되지 않아 실제적인 개혁기로 보기는 어렵다. 고려의 개혁 방향과 내용이 구체화된 것은 공민왕 시대였다.
공민왕 즉위 후 원의 영향력을 벗어나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한 신진 사대부가 주축이 돼 개혁의 방향을 설정하고 개혁이 시작됐다고 보는 학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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