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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시대의 관료

2013-08-17

통일 신라 시대에는 진골 출신들이 권력의 중심에 서서 나라를 이끌었다.
고려 초기에는 호족 출신들이 대거 관료에 진출해 중심 세력을 형성했는데 이들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힌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려 시대에 최초로 과거 제도가 시행돼 관료제도 정착의 계기가 된다. 고려 시대의 관료에 대한 이모저모를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알알아 본다.

고려 초기에는 호족들이 관료층 형성
고려 초기에는 개국 공신인 지방 호족들이 관료가 되어 주요 국가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나라를 이끄는 중심이 된다.
관료층이란 사.농.공.상의 사회 계급 중에서 사(士) 즉 사대부 계급을 말한다. 고려 건국 때 공을 세운 호족들이 중심 세력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경제적, 군사적 능력이 있는 자들이었지만 나라 전체를 이끌어가기 위한 지적인 면이 부족해 고려 초기에는 이들에 의한 많은 정변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고려 광종 때 과거제도 시행
광종 때 과거제도가 시행돼 과거 제도를 통해 배출된 인재들이 관료로 진출하면서 관료 제도의 기반이 마련됐다. 한국사 전체에 있어 획기적인 일이다. 일반 관료층은 지위가 구분됐다. 1품에서 9품으로 나뉘었다.
2품 이상의 관료는 문,무가 구별되지 않았다. 4품에서 6품까지 관료는 참상이라고 국왕이 주재하는 5일마다 열리는 정기 조회에 참석해 국가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7품에서 9품까지는 관료 중에는 하위 계급에 속한다.

저비용, 고효율을 지향
고려의 관료 수는 4,400명 정도였다. 이 중 문인은 1/3로 2/3의 무인 수보다 적었다. 현재 한국의 국가 공무원 수가 140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고려의 관료 수는 매우 적었다. 따라서 관료가 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또 과거를 통해 관료가 되더라도 실제 직책이 부여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기록에는 이규보가 관료가 되고 직책이 부여되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리는 현실을 개탄하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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