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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관을 우대한 고려의 관료제도

2013-09-07

고려시대의 관료제도의 특징은 과거제도이다. 과거제도는 관료가 되기 위한 중요한 관문이다.
지난 시간에 이어 고려 시대 관료의 종류와 역할, 특히 문관을 무관보다 우대한 고려 시대의 배경을 중심으로 그 특징을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문관, 무관, 이직 등으로 관료 구분
고려 시대의 관료는 크게 문관, 무관, 이직으로 구분한다.
문관은 과거제도를 통해 선발한 인재들이 직책을 부여받는다. 주로 행정 책임을 맡았다. 반면 무관은 전쟁을 지휘하는 관료다.
또 이직은 행정일을 하지만 결정권은 없고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리이다. 고려시대에는 조선시대와 달리 문관을 무관보다 우대한 것이 특징이다.

문관만 과거 통해 발탁
조선시대에는 과거제도가 문과와 무과로 나뉘어 따로 관료를 선발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문관만 과거를 통해 선발했다. 무관은 주로 강건한 신체, 전쟁 능력 등을 고려해 장수로 선발했다.
이에 따라 자연히 엄격한 시험을 거친 문관들이 우대받았다. 문관은 9품에서 정 1품까지 승진할 수 있지만 무관의 경우 가장 높은 상장군이 3품이었다. 또 전쟁 시에도 최고 책임자는 문관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문관에 비해 무관을 차별하는 풍토가 후에 무신정변이 일어나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행정 실무를 담당한 이직
이직은 행정 실무을 담당한 하급 관리다. 품계가 없으며 세습된 것이 특징이다. 이직 중 지방 관리를 향리라 하고 중앙 관리를 서리라고 했다.
이직을 도필지임(刀筆之任)이라고도 했다. ‘칼과 붓의 임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무판 위에 기록을 했는데 다 쓰면 칼로 글씨를 깎아내고 다시 붓으로 기록한다.
이런 뜻으로 주로 모든 행정일을 담당하는 직무라는 뜻으로 쓰였다.

명예로운 청요직(淸要職)
고려 시대에 깨끗하고 중요한 직책이라는 뜻으로 ‘청요직’으로 불리는 직책들이 있었는데 임금과 관리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요즘의 감사와 같은 직책이 있었고 또 외교 문서와 임금의 명령 등을 작성하는 직책, 또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일을 명예로운 직책으로 여겼다. 관리가 되면 이런 명예직을 거치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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