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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의 본관제

2013-10-12

지난 시간에 고려의 실질적인 통합에 있어 큰 역할을 한 본관제에 대해 얘기했는데 이번 시간에는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보다 구체적으로 본관제 시행에 대한 몇 가지 시각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짚어본다.

본관제에 대한 몇 가지 시각
첫 번째 시각으로는 고려의 본관제는 신분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신분에 따라 지방의 군현을 나누기 위한 제도였다는 시각이 있다.
유물 사관에 입각해 천민 지역과 양인 지역으로 구분해 신분 차별을 했다는 시각인데 다소 편협한 시각이다.
두 번 째 시각은 고려의 문벌 귀족 세력이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본관과 성을 부여받아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였다는 시각이다.
이런 관점도 본관제의 성격을 정확히 표현했다고 하기 어렵다. 이 두 가지 관점은 본관제의 사회 통합적 의미를 배제한 관점으로 통합보다는 차별에 역점을 두고 해석한 것인데 고려의 본관제는 사회 통합적 의미가 더 강하다.

지방 호족 세력들을 흡수 통합
본관제 시행으로 고려 건국 때 공이 컸던 지방 세력들에게 본관과 성을 부여해 각 지역 통치권을 부여하고 이들이 중앙 세력과 규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 의미가 크다. 이 본관제로 고려는 중앙 왕권을 중심으로 한 사회통합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인 통합, 그리고 사회 경제적으로 조세 징수와 노역 소집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지역마다 본관과 성을 부여, 지역 통치 연계
지역마다 유력한 호족 세력에게 그 지역의 본관과 함께 성을 부여함과 함께 지역 통치권을 위임함으로써 지역의 조세, 노역 징발을 용이하게 했다.
조선의 경우 농업 기술이 발달해 전 농민들을 양인으로 구분하고 조세 및 노역의 징발이 용이했지만 고려의 경우 지역마다 발전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지역의 특성에 맞게 본관과 성을 가진 호족들이 각각 다스리게 하고 그 호족 세력들이 중앙 왕조에 충성하게 하는데 본관제가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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