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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시대 신분제도의 문제점

2013-12-21

고려시대의 신분제도는 크게 양인과 천인으로 나뉘는 양천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초기에는 별 문제가 없는 듯 보였으나 갈수록 신분간의 갈등이 심화됐다. 특히 양인 중 특정업에 종사하며 국가에 특정 산물을 바치는 잡척층의 불만이 고조되고 고려말 민중 봉기의 주 원인이 됐다. 고려시대 신분제도의 문제점을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사회 경제 발달에 따른 변화 없어
12세기에는 생산력이 발달하고 인구가 변화하는 등 사회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했지만 한 지역에 잡척층이 머물며 국가에 바칠 특산물을 생산하는 부곡제는 여전히 시행됐다.
사회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산물을 관리층은 소유할 수 있었지만 부곡제를 그대로 유지해 잡척층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더욱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이 고려말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신분제가 붕괴된 원인이 됐다.

거주지 이탈, 스스로 천민이 되기도
고려시대에는 신분 별로 거주지 제한이 엄격했다. 특히 잡척층이 머무는 지역을 부곡이라 하여 한 곳에 평생 머물며 국가에 바칠 물품들을 생산해야 했는데 잡척층은 정해진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힘든 생활에 불만을 품은 잡척층들이 거주지를 잍탈해 떠돌이 생활을 하는 풍토가 늘어났고 또 스스로 천민으로 전락해 국가의 역에서 벗어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 큰 토지를 지닌 지주들은 농사를 지을 일손이 부족하자 양민들을 억지로 천민으로 만들어 농사일을 시키기도 하였다. 그 밖에 관리들이 직접 조세를 매기는 과정에서 수탈의 행포가 심하였다.

고려 붕괴와 함께 신분제 몰락
복잡한 신분제와 함께 특정 계층들의 불만, 저항이 커지면서 민중 봉기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고려 멸망의 원인이 된다. 고려가 멸망하면서 복잡한 신분제는 양인과 천인 두 가지로 단순화되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토지, 조세 제도 개혁의 명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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