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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의 속관제

2014-01-11

지난 시간까지 고려 시대 경제 사회의 가장 중요한 제도라고 볼 수 있는 ‘군현제’에 관해 알아보았다. 고려의 군현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속관제’다
속관제는 군현에 파견되는 수령을 보좌하는 관료를 파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고려의 속관제에 대해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수령에 예속돼 보좌하는 속관
‘속관(屬官)이란 소속된 관리라는 뜻으로 각 군현에 파견된 수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 관리를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330개 군현에 수령을 파견해 다스렸지만 고려 시대에는 130 곳에만 수령을 파견하고 그 이하 하부 조직에는 속관을 파견해 수령의 지시에 따라 보좌하는 일을 하도록 했다.

과거 급제하면 속관으로 첫 발령
조선시대에는 문과에 급제하면 첫 발령지가 성균관, 교서, 성문원 등 유학 기관들이었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문과에 합격하면 첫 발령지가 보통 속관으로 판관, 장서기 등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고려 시대의 속관제는 하급 관리를 군현 이하 조직에 파견에 지방 호족들을 관리 , 통제하기 위해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통 1명의 수령 밑에 6명의 속관들이 보좌했다. 판관은 수령에 이어 2인자로 큰 고을을 다스렸고 속관은 작은 마을의 재판 등을 맡았다.

통치를 위한 속관제, 백성들 수탈 피해 발생
고려 시대의 속관제는 벌집처럼 짜여진 고려의 군현제하에 지방 하부 조직까지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그러나 지방 하부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있을 경우 일반 백성들에 대한 수탈이 공공연히 자행돼 백성들을 고통을 가중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속관으로 파견됐던 당시 마을의 폐해를 보고 적은 이규보의 기록이 속관제의 폐단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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