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역사

고려의 불교

2014-03-01

고려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다름 왕조들에 비해 불교의 세력과 위상이 높았다는 점이다. 불교와 관련된 공식적인 기구와 제도가 있어 그 위상을 말해준다.
또 불교와 정치의 결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킨 점은 폐단으로 지적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불교, 이모저모를 국민대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진단한다.

불교의 위상 말해주는 왕사, 국사 제도
고려시대에는 왕사와 국사제도가 있었다.
왕사는 왕의 스승이고 국사는 나라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왕과 나라가 왕사와 국사를 스승으로 모시는 이 제도는 고려시대 불교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불교의 교종과 선종의 장인 수장, 승통, 선사, 대사 등은 각 교단의 의견을 모은 뒤 국왕의 재가를 받아 임명됐다. 국사와 왕사의 권위는 비슷했지만 국사가 왕사보다 더 존경받는 위치였다.

승려도 과거 합격해야 관직에 등용
고려시대에는 승려들이 응시하는 승과라는 과거제도가 있었다.
승과에 합격해야 각 사찰 주지 등 불교의 주요 관리직에 임명될 수 있었다. 승록사는 승려들의 진급 등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각 승려의 이력을 기록하고 관리해 진급 등에 반영하는 기관이었다.

승려의 정치 참여
고려시대에는 불교 위상이 높았고 또 세력도 막강했는데 이런 점 때문에 후에 승려들의 정치참여가 많았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에 이미 승려들의 정치참여를 예견하고 경고하는 글을 남겼다. 때로는 왕이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일부 교단과 결탁하기도 했다. 일부 귀족들이 종단 세력과 결탁해 왕권을 견제하기는 경우도 있었다.

불교 번성, 정치 참여의 폐단 남겨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국교 급으로 존중해 불교가 융성한 시기였다.
그러나 불교가 세력화되고 각 사찰들이 경제력을 쌓아 경제 세력을 발전하면서 이권 다툼, 세력 다툼의 온상이 되는 폐단을 남겼다.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