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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 원 간섭기의 ‘민의 지배층 진출’

2014-09-06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는 원의 실질적 지배로 고려 정치에 큰 변화가 있었다.
특히 원나라에 충성하고 왕의 총애를 받아 천민, 평민들이 대거 지배층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았다. 원 간섭기의 정치 행태에 대해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얘기를 나눈다.

원의 영향 받은 고려 왕, 측근 정치 치우쳐원 간섭기에 고려의 왕이 되려면 원나라 공주의 피를 이어받아야 했다.
원에서 원나라 교육을 받고 고려로 돌아와 고려의 국왕이 됐기 때문에 고려의 왕들은 원나라에 머무는 동안 함께 있었던 신하들, 측근들 위주의 정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특히 평민들이 왕의 환심을 사서 지배층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았다.

고려사에는 비판적 시각으로 기록고려사에는 이렇게 왕의 총애를 받은 평민들이 지배층으로 승격한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왕의 총애를 받아 왕을 보좌하는 신하를 폐행(嬖幸) 혹은 폐신(嬖臣)이라 하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 정치가 행해지는 것을 폐행 정치라 한다. 고려사는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 편찬된 서적으로 사대부가 주축이 돼 서술한 것이므로 이렇게 평민들의 신분이 격상된 것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조선문명사’에는 긍정적 시각고려사와 달리 1923년에 편찬된 안확이 쓴 ‘조선문명사’에는 고려 후기 충렬왕 이후의 ‘폐행, 혹은 폐신 정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원 간섭기가 평민이나 천민들의 그간 불만이 해소되고 또 신분 제도를 혁파하는 중요한 계기로 오히려 사회 전체에 활력이 됐다는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려사 ‘폐행 열전’에 자세히 기록원 간섭기의 폐행 정치에 대해 고려사 중 ‘폐행 열전’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폐행 55명 중 평민, 천민 출신들이 45%나 된다. 원 간섭기에는 몽골어를 잘하는 역관들, 그리고 몽골의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그 공을 인정받아 출세를 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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