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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무왕 프로젝트! 미륵사에 잠들다.

2009-05-09

무왕 프로젝트! 미륵사에 잠들다.
전라북도 익산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거대한 사찰이 하나 있다. 건물이 들어선 딸의 면적만 5만 여 평에 그 위에 3개의 탑과 3개의 금당이 세워진 독특한 양식, 여기에 창건 기간만 36년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규모! 바로 백제의 무왕 서동이 지은 미륵사이다. 그렇다면 무왕은 왜 백제의 수도인 부여가 아닌 익사에 이렇게 큰 사찰을 지었을까?


미륵사 창건 이유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한 것은 당시 백제 전반에 퍼져 있던 미륵 신앙 때문이다. 미륵 신앙에 의하면 미래의 미륵불이 출현할 때,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는 ‘전륜성왕’이라는 훌륭한 정치가가 등장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표방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동시에 불교에서 말하는 전륜성왕 이상의 존재로 구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무왕은 스스로를 전륜성왕이라 한 적은 없지만 미륵사 창건을 계기로 자신을 전륜성왕의 반열에 올리려 했다. 무왕은 자신의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는데, 무왕이 익산에 미륵사를 지은 것은 단 하나, 바로 백제의 부흥을 위한 것이었다.


과부의 아들에게 왕위에 오르기까지...

그렇다면 무왕은 어떻게 왕위에 오르게 되었을까? 과부였던 어머니와 연못 속 용 사이에서 태어난 서동이 왕위에 오른 것은 기본적으로 왕족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기 538년, 백제 성왕은 수도 공주에서 자연이 수려한 땅 부여로 천도했다. 성왕은 천도와 함께 당시의 지배 세력을 재편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했는데 이는 왕권을 강화하고 백제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기 551년에는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고자 신라 가야군과 연합해서 고구려 공격을 감행해 결국 한강 유역을 되찾았다. 그러나 백제의 생각과는 달리 신라는 중국과의 직접 교통 요지 확보를 위해 백제와의 동맹을 버리고 백제땅인 한강 하류를 점령했고, 결국 백제는 신라 때문에 모든 걸 잃게 되었다. 이에 분개한 성왕은 서기 554년에 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라 정벌에 나섰다. 이 전쟁이 바로 백제와 신라 간에 가장 치열했던 관산성 전투이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을 신라에게 미소를 보냈고, 성왕은 목숨을 잃게 되었다.

성왕의 죽음으로 백제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성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위덕왕이 왕위에 올랐다. 귀족들은 패전의 책임을 묻는 위덕왕에게 물었고, 자연스레 정국 운영의 주도권은 귀족들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 후 위덕왕의 뒤를 이은 혜왕, 법왕이 단명함으로써 왕권은 점점 약해지고 백제 귀족들의 입김은 점점 더 거세졌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배경 없고 쉽게 다루기 쉬운 몰락한 가문 출신의 왕족을 찾다가 익산에서 마를 캐며 사는 서동을 발견했다. 서동은 그야말로 정치정략적인 목적에서 채택된 왕이었던 셈이다.


무왕! 백제 부흥을 꿈꾸다

무왕은 자신에게 최대 현안은 잃어버린 한강 유역의 땅을 되찾는 것이라 생각하고, 즉위하자마자 신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백제 역사상 무왕만큼 신라를 집요하게 공격한 왕도 없었는데, 무왕은 집권 41년 동안 무려 12번이나 신라를 침공했다. 그런 무왕에게 익산은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익산은 금강과 미륵산으로 둘러 싸여 방어하기 좋은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금강을 통해 바다로 진출도 용이했으며, 넓은 평야 지대로 물산도 풍부했다. 김제나 금마 지명에서도 보듯이 금도 많이 생산되는 등 지리적 요건에 주목하고 경제적으로 풍요했다.

뿐만 아니라 무왕은 약해진 왕권도 회복했다. 미륵사지 석탑 사리봉안기에서 은제관식 2점이 나왔는데, 이 관식은 관료들의 머리 장식이다. 성광 때 관료들의 관에 대한 제도 정비가 완료되었는데, 사비로 천도하면서 관료들의 서열을 16 관등제로 정비했다. 무왕은 관등제를 정비할 때 관장식에도 서열을 정했는데, 왕은 금제관식, 1품에서 1품까지는 은제관식이었다. 은제관식은 부여, 논산, 남원 지방에서도 나왔는데 은제관식이 지방에서 나왔다는 것은 백제가 전 지역을 일원적인 체제로 다스리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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