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역사

신라 김 씨 왕족과 흉노 왕족의 관계

2009-07-25

신라 김 씨 왕족과 흉노 왕족의 관계
문무왕 비석 발견
조선 정조 20년인 1796년, 통일 신라인들이 삼국 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비가 밭을 갈던 농부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비석은 두 동강 나있었고, 200년이 흐른 뒤 문무왕릉비에서 나머지 반쪽의 비석이 발견되었다.

문무왕 비문은 문무왕이 죽고 나서 세운 절에 세운 비석으로 발견 당시 많은 재야사학가들이 관심을 가졌다. 추사 김정희도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관심을 가진 부분은 신라 김씨 왕족의 뿌리를 밝히는 ‘투후제천지윤’이다. ‘투후’는 벼슬 이름으로 투성을 다스리는 제후라는 뜻이다. 투성은 지금의 중국 산둥성 하택시에 있는 옛 성으로 당시 투후는 중국 전한시대 무제 때 시중을 지낸 김일제란 사람이다.

흉노 왕자 김일제
김일제는 한나라 때 이름을 날린 흉노족 출신의 마부로 그의 아버지는 중국 감숙성 무위 지역을 호령하던 휴도국의 흉노왕이었다. 중국이 한나라가 되면서 실크로드 개척을 위해 서쪽 세력을 막기 위해 감숙성에서 흉노와 일대 결전을 벌였는데 당시 인질로 잡혀온 사람이 바로 김일제이다. 김일제는 무제를 암살하려던 반란세력을 진압하면서 마구간 노예에서 제후국의 왕으로 임명되었고, 당시 그가 맡은 직책이 바로 투후이다. 김씨 성은 한무제가 그에게 내린 일종의 하사품이었다.

문무왕 비문에는 투후 김일제와 함께 우리나라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데 바로 신라 문무와 선조 15대조로 기록되고 있는 성한왕이다. 문무와 비문과 동생 김인문의 묘비 모두 신라 김씨의 시조를 성한왕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신라 김씨의 시조로 김알지로 알고 있는데, 역사상 김알지와 성한왕은 유사점이 많다. 문무왕 비문 속에는 성한왕의 탄생 장면에서 하늘과 수풀, 금수레가 등장하는데 이는 김알지의 탄생 설화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 때문에 항간에는 성한황이 김알지일 것이란 추측도 있는데 이는 문무왕 비문을 연구했던 추사 김정희 조차 인정한 사실이다. 금석문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는 ‘해동비고’의 기록을 통해 ‘문무왕 비문 속 성한왕은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였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또한 문무왕 비문에는 ‘투후제천지윤 전칠엽’이란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김일제와 성한왕의 관계를 알려주고 있다. ‘엽’은 세대를 가리키는 말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투후의 후손이 7대를 전해왔다는 것으로, 흉노 김일제의 후손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7대를 내려왔다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연결되는 인물이 바로 신라 15대조 성한왕이다. 문무왕 비문에도 신라 김씨들이 흉노를 자기들의 조상으로 여겼다는 조상의식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신라 김씨 왕족의 뿌리가 바로 흉노족 김일제라는 것이다.

신라와 흉노의 관계
신라는 흉노의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신라의 뿌리가 흉노족이라는 사실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김일제는 기원전 86년에 3만 여명의 흉노족을 데리고 중국 산둥성에 투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김일제 후손들은 7대에 걸쳐 한나라에서 영화를 누렸지만 중국 대륙에서 전한과 후한을 가르는 대격변이 일어나면서 중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전한은 왕망의 쿠데타로 인해 망했는데 당시 왕망을 도왔던 김당은 김일제의 증손자이다. 또한 왕망과는 이종사촌 사이로 후한을 건국한 유수가 왕망을 멸하면서 더불어 김일제의 후손 모두 멸할 위기에 처해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 떠난 것이다.

그리고 흉노족은 일반적으로 무덤을 만들 때 돌을 쌓아 만드는 양식을 사용하는데, 신라 김씨 왕족의 ‘적석목곽식묘’는 흉노의 무덤 양식을 닮아있다. 또한 그 속에서 흉노족의 대표 상징물은 황금 유물까지 쏟아져 나왔다. 이처럼 신라의 독특한 문화는 고구려와 백제와 달리 흉노족의 황금문화에 더 가까워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남쪽에서 중국 돈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바로 왕망 때의 돈이다. 왕망 시대 15년 남짓 짧은 기간 사용했던 화폐는 화천으로 대가야 왕국의 유적지에서 출토되면서 신라가 이주 세력이 세운 나라라는 것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신라의 왕을 배출했던 세력들이다. 신라의 왕을 배출한 세력은 혁거세의 후손과 탈해의 후손, 알지의 후손 세 세력이다. 이 중 탈해의 경우에는 삼국유사 가락국에 중국 배들이 오고가는 물길을 수도로 따라 경주까지 온 것으로 되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혁거세가 태어나거나 하늘에서 내려온 금궤에서 알지가 나온 것을 봐도 그들이 다른 곳에서 신라로 이주해 온 이주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주민들이 세력을 키워서 신라의 왕이 되고 세 세력이 동맹을 맺어 왕위를 장악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김알지의 금궤 설화는 중국 땅에서 신라로 이주해 온 새로운 민족인 투후 김일제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