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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위기의 조선! 백헌 이경석의 선택

2010-04-03

위기의 조선! 백헌 이경석의 선택
치욕의 역사, 삼전도 항복비문
임진왜란을 계기로 명나라가 몰락해 가는 동안, 후금은 만주 전역을 통일하고 빠르게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그리고 1636년 ‘청’으로 국호를 고치고 천하의 주인임을 선포하며 이내 조선에까지 손을 뻗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 때 지원병을 보내준 명나라와의 의리를 주장하며 청과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척화론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실제로 조선후기 역사에서 주화론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사람들은 물론 후손들까지 끊임없이 공격 받았다.

하지만 1636년 12월, 12만 청나라 대군에 밀려 황급히 몸을 피한 인조와 대신들은 결국 남한산성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신들은 여전히 척화를 주장했다. 이경석과 같이 척화를 우려하는 대신들이 있었지만 척화파의 반발로 강화교섭마저 결렬되는 사이 남한산성 안에서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사람들은 쓰러져 나갔다. 청나라가 대포를 쏘며 조롱해도 척화파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고, 결국 남한산성에 들어온 지 45일 째 되던 날 인조는 청나라에 세 번 큰 절을 할 때 마다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스런 삼배구고두를 했다.

1637년, 청나라는 인조에게 패전의 역사를 기록한 비문을 직접 지어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신하들은 한때 오랑캐라 부르며 무시하던 청나라의 전적을 칭송할 수 없다면 한사코 그 명령을 외면하려 했다. 신하들은 일부러 글을 거칠게 짓고 병을 핑계 삼는 등 계속해서 거절했고, 결국은 명문가 출신으로 19살에 문과에 급제해 당시 탄탄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던 이경석이 그 어느 누구도 쓰고 싶지 않았던 역사인 '삼전도 항복비문'을 쓰게 되었다.

명분보다는 현실을 선택한 이경석
즐비한 시체 속에 수많은 백성들이 청나라로 끌려가고, 우여곡절 끝에 살아 돌아온 자들은 또 다시 명분론에 쫓겨 설 곳마저 없는 등 병자호란이 끝난 조선은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에서 인조가 이경석과 같은 대신들에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반면, 다수의 척화파 대신들은 오랑캐에게 굴복한 더러운 임금은 섬기지 않겠다며 하나 둘 조정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후수습이 급한 시기에 이경석은 주화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척화파까지 끌어안을 것을 주청하며 힘을 모으려고 했다. 이경석은 이조판서 등의 벼슬을 거치는 동안 숨은 인재 발탁에 누구보다 공을 들였다. 당시 그가 등용한 인재 중에는 후에 송시열 같은 재상들이 여럿 나왔다.

1649년 효종 때, 이경석의 이름이 빛난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북벌을 위해 성을 수리하고 군사를 양성시킨 일이 청나라에 발각되면서 책임자인 효종은 물론 조선 전체가 다시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다. 그때 영의정이었던 이경석은 자발적으로 청나라 사신을 직접 맞이했다. 사실 청나라는 북벌운동을 한 효종을 문책하려 했으나 이경석은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유배길에 올랐다. 당시 효종은 자신을 대신해 유배를 떠나는 이경석의 뒷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역사가 기억하는 백헌 이경석
이경석이 74살 되던 해, 현종은 이경석에게 궤장을 하사했다. 궤장은 70살을 넘긴 신하 중 공이 높은 사람에게 왕이 직접 내리는 의자와 지팡이로 반세기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라가 위급할 때 몸과 명예를 아끼지 않은 공으로 당대 이경석의 공식적인 평가는 인조, 효종, 현종을 아우르는 '삼조'의 충신이었다. 하지만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무리들이 여전히 있었다.

이경석이 천거한 인물 송시열을 비롯해 북벌을 주장하며 명분론을 내세우는 노론 세력에게 있어 이경석은 삼전도비문을 쓰며 자기 뱃속을 채운 소인배일 뿐이었다. 이로 인해 이경석은 역사 대대로 폄하되는 운명을 겪었다. 이런 시류 속에서 이경석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은 불태워지고 땅에 묻히었다. 그 후 1917년 일본은 한민족의 열등감을 자극하기 위해 전쟁 중에 쓰러진 삼전도비를 다시 세웠고, 역사는 이경석의 이름을 그렇게 기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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