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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920~30년대 판 미인 신드롬! 독살 미인 김정필 사건

2010-07-31

독살 미인, 김정필 사건
단순한 치정 사건 같지만 독살 미인이라는 선정적인 제목 때문에 당시 세간의 주목을 받은 한 기사가 있다.

방년 스물이라는 꽃같은 미인이 자기 남편을 독살하고 재판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건이 경성복심법원으로 넘어왔는데, 그는 함경북도 명천군에 사는 김정필이라는 여자이다. 그는 금년 4월에 지명동에 사는 김호철에게로 시집을 갔는데 원래 품행이 단정치 못하여 시집 오기 전에 자기와 12촌 되는 같은 마을 김옥산과 수삼 차 정을 통한 일까지 있었다. 항상 자기 남편 김호철이 얼굴이 곱지 못하고 무식하며 성질이 우둔한 것을 크게 비관하여 일종의 번민을 느껴 오던 중 남편을 없애고 다른 이상적 남편과 살아보려고 주야로 생각했다. 금년 5월 9일 우연히 동리 청년들의 이야기하는 소리 중에 랏도링이라는 쥐 잡는 약이 사람의 생명까지 빼앗는 독약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서운 생각을 품고 그 이튿날 동리 사람을 시켜 그 약을 사두었다. 23일 주먹밥과 엿에다 그 랏도링을 섞어 놓고 남편을 정답게 불러가지고 하는 말이 “그대가 항상 앓고 있는 위병과 임질을 고치려면 이 약을 먹으라. 이 약은 나의 오촌이 먹고 신기하게 나은 것이니 안심하고 먹어도 좋은 것이라.” 하여 주먹밥을 먹였는데 그것을 먹은 남편이 구역질을 하며 토하자 다시 엿을 먹으라 하여 그 엿까지 먹여 드디어 금년 5월 30일에 사망케 하였다.
- 동아일보, 1924년 7월 17일 <본부 독살 미인 사형 불복>


김정필은 1905년 함경북도 명천군 궁벽한 산골에서 가난한 농부 김경열의 오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보통학교조차 다니지 못해 일본어는 물론 한글조차 읽고 쓸 수 없는 평범한 구여성이었다. 그리고 1924년 4월 27일, 3살 연하의 김호철과 혼례를 치렀다. 구식 혼례다보니 신부 김정필은 물론 장인 김경열조차 혼인식 당일에야 신랑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결혼한 지 채 한 달이 되기도 전인 5월 23일, 김호철은 심한 구토를 하며 앓아 누었다. 김호철의 모친 최씨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들 병세에 차도가 없자 이유를 물었고, 김호철은 아내가 준 주먹밥과 엿을 먹은 후부터 배가 아프다고 말했다. 모친 최씨는 며느리가 아들에게 독약을 먹였다며 주재소에 고발했다.

사건을 접수한 주재소 순사는 김정필을 체포하는 한편, 의사 최승하를 불러 죽어가는 김호철을 진찰하게 했다. 진찰해 보니 김호철의 피부는 누렇게 변색되었고, 입에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토사물과 대변에서도 입에서와 똑같은 악취가 났는데 이는 황린 성분이 든 독약을 마셨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세였다. 독약을 마신 지 4~5일은 지난 것처럼 독 기운은 이미 온몸에 퍼질 대로 퍼진 상태여서 의사로서도 도저히 손쓸 도리가 없었다

결국 김호철은 이튿날인 오후 4시경, 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 결혼한 지 겨우 한 달 만의 일이었다. 사망 직후 부검해보니 입과 코에서 암갈색 진물이 흘러내렸고, 창자와 간장은 적갈색으로 변색된 상태였다. 부검을 담당한 최승하는 황린에 의한 독살이라고 결론지었다.

미인 김정필을 향한 관심
종로경찰서에서는 경관 수십 명이 출동하여 법원 정문과 법정 문 앞에 몇 사람씩 파수를 세우고 장내 장외에 모여든 수천의 군중을 해산시키기에 노력했다. 장내에 쇄도했던 군중은 두어 시간의 사투 끝에 어느 정도 해산시켰으나 장외 즉 종로 일대에 쇄도했던 군중은 좀처럼 해산이 되지 않았다. 경관에게 쫓겨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오후 두 시까지 의연히 재판소 문을 바라보며 모여 있었다. 법정 앞 담에는 수십 명의 기생이 매달려서 춘삼월에 고운 꽃이 핀 산언덕과 흡사했다.
- 조선일보, 1924년 10월 11일


김정필이 김호철을 독살했다고 추정되는 가운데, 사람들은 사건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도 김정필에게 관심이 더 많았다. 2심 재판이 열린 10월 10일, 종로 일대에는 꼭두새벽부터 2,000여 인파가 운집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날 법원 앞에 모인 2,000여 인파는 3.1운동 이후 종로에 운집한 최대의 인파였다. 인파에 막혀 법원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김정필 공판을 제외한 모든 민, 형사 재판이 취소되는 사태까지 연출되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독살 미인 김정필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은 동정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재판장에게는 매일 같이 투서가 날아들었다. 경찰 수사에 강압이 있었고, 피고인에게 적대적인 시부모측 인물만 증인으로 채택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관선 변호인의 불성실한 변론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일본인 관선 변호인에게 사건을 맡길 수 없다는 여론이 들끓자 이인 변호사가 무료 변론을 자청했다. 훗날 대한민국 초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게 되는 이인은 당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지 1년밖에 안 된 혈기왕성한 소장 변호사였다.

그렇다고 김정필을 동정하는 투서만 답지한 것이 아니었다. 공판을 열흘 가량 앞두고 요시다 재판장 앞으로 60여 명이 연서한 진정서가 들어왔다. 진정서에 연서한 60여 명은 모두 김정필의 시집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다. 진정서의 내용인즉 김정필은 본부를 독살한 천하의 독부로 그 죄가 가히 사형에 처해 마땅하니 재판장은 엄중히 처벌하여 달라는 것과 방청인들은 그 독부를 매우 동정하는 모양 같으나 결코 동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명천 주민의 진정서가 들어온 다음 날, 요시다 재판장 앞으로 또 한 장의 투서가 날아들었다. '김정필이 사는 동리의 사정을 썩 자세히 아는 사람'이라고만 밝힌 익명의 투서자는 명천 주민의 진정서는 김정필의 시부모가 뒤에서 운동하여 60여 명의 연명을 받은 것이니 재판장은 그리 알고 김정필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려줄 것을 호소했다. 언론 역시 진정서를 제출한 명천 주민을 거세게 질타했다.

불꽃 튀는 여론전에서 김정필이 미인인가 아닌가 역시 쟁점이 되었다. 조선일보에 당시 공판 사진을 본 사람들은 미인이 아니라는 여론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김정필을 변호한 이인 변호사 역시 김정필은 미인이 아니라고 자서전에 썼다.


독살 미인 김정필 사건, 결과는?
사건을 맡은 요시다 재판장은 피고인에 대해 지금까지의 조사에 의해 역시 본부를 독살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정필의 나이가 어리고 여러 가지 사정을 보아서 달리 처벌할 필요가 있어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언도했다. 김정필은 무기징역 판정에 억울함을 표하며 상고를 밝혔지만 증거가 명약관화해서 상고를 포기했다.

김정필의 상고 포기로 법정 재판은 끝났지만, 독살 미녀 김정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1924년 사건 발생 이후, 1935년 4월, 김정필이 12년 만에 가석방될 때까지 신문과 잡지에서는 김정필에 대해 보도했다. 가히 김정필 신드롬이라 할 만큼 대단한 관심으로 심지어 경성복심법원 직원이 판결을 받은 후까지 이처럼 말썽 많은 사건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김정필은 수감 생활 대부분을 바느질을 하며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기 바쁘게 공장에 나가서 해질녘까지 바느질로 기모노를 지었다. 김정필의 바느질 솜씨는 여죄수 중에 단연 최고여서 서울에 사는 일본인 상류 가정의 기모노는 도맡아 지었다. 김정필은 성실하고 마음씨도 따뜻해 서대문형무소 여죄수 사이에서도 단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새로 수감되는 여죄수를 반가워해서 틈만 나면 찾아가 세상 소식을 묻곤 했다. 옥중에서 한글을 깨우치고 일본어까지 배웠다. 김정필은 세 차례에 걸친 감형으로 1935년 4월, 32살의 나이, 수감 12년 만에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당시 본부 독살 사건은 흔하디흔한 사건이었지만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남편을 독살한 무기수 김정필이 1920~30년대 조선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그가 절세미인이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미인이었기 때문에 세인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미인이었기 때문에 세인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것에 끌리고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미인을 향한 세상의 관대한 시선은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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