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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00년 전, 크리스마스 풍경

2010-12-25

일제강점기 시절, 성탄절
성탄절은 일제강점기까지 기독교인의 명절이었을 뿐 국경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교회를 중심으로 성탄축하예배와 크고 작은 행사가 열렸다. 새벽 찬양대는 골목을 누비며 캐럴을 불렀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카드와 선물을 주고받는 가정도 드물지 않았다. 일부 부유한 집 아이들은 커다란 양말을 문고리에 걸어놓고, 선물을 가지고 올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다 잠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처럼 1년 중 가장 상업적인 날이기도 했다.
매년 12월 25일 전후에는 크리스마스 축하를 의미한 ‘크리스마스 축하권’ 회원권, 성만찬회권 등을 1원 20전 내지 2원에 일반에게 판매 모집하여왔는바 그 중에는 카페 여급에게 몇 장씩을 책임지워 팔게한 까닭으로 매수를 강요하는 일도 있음으로 대전경찰서에서는 이들 영업자에게 대하여 그 불가함을 설유하였음으로 영업자들도 당국에 뜻을 이해하고 당일에는 찬란한 장식도 분에 넘치지 않도록 하리라 한다.
- 매일신보, 1936년 12월 22일

상업적으로 왜곡된 크리스마스
교인들이 교회에서 경건하게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는 동안, 거리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크리스마스를 즐기던 사람들이 점령했다. 크리스마스가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경건한 날이 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것은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심 거리에는 ‘토산 크리스마스’라 불리던 또 다른 광란의 축제가 펼쳐졌다.
“회비 1원 50전 요리 두 가지, 술 한 병, 야회용구 증정, 50명 미녀 써비스!” 이것은 시내 모 카페의 크리스마스 이브의 선전 활자.
“금번 공사도 끝나고 동시에 설비와 요리를 쇄신하옵고 오는 24~5일 양일의 크리스마스를 기하야”로 시작하여 “대인 2원50전 소인 1원50전”으로 끝맺은 것은 시내 모 그릴의 크리스마스 이브의 초대장.
- 조선일보, 1936년 12월 25일

여기서 토산이란, 토산품을 뜻하는 것으로 상업적으로 변질된 크리스마스를 속되게 표현한 것이다. 1930년대나 요즘이나 크리스마스에 술에 취하고, 음식점에 메뉴판을 바꿔 가격을 올려 받는 등 한국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풍속인 것은 여전하다.

크리스마스가 상업적으로 왜곡된 것은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직전인 12월 16일이 200~400%씩 지급되는 연말 보너스 날이었기 때문이다. 월급쟁이들은 12월 봉급까지 더해 평상시 월급의 3~5배까지 두툼한 월급봉투를 받았다. 오랜만에 두툼해진 월급쟁이의 호주머니를 털기에 크리스마스이브 축하연만큼 그럴듯한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이브가 뜻하지 않게 1년 중 가장 퇴폐적인 밤이 되고, 빈부의 격차를 가장 극명하게 갈라놓은 밤이 되고 말았다. 그런 밤을 비판하기 위해 1934년 시인 김기림은 ‘거지들의 크리스마스 송’이라는 시를 발표했고, 이태준은 1932년 ‘천사의 분노’라는 콩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소재 소설, 천사의 분노
크리스마스의 대표적인 소설하면 스크루지가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있는데, 1930년대 한국에도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소설이 있었다, 바로 ‘천사의 분노’이다.
《천사의 분노는 모 사회사업 단체 자선부장으로 있는 P부인이 불쌍한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쁨을 알리기 위해 크리스마스 저녁 집으로 초대할 불쌍한 거지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데서 시작된다. 막상 거리로 나서니 불쌍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거지도 여러 종류였다. 나병환자나 모르핀 중독자를 만날 때는 아무리 불쌍해도 자기 집으로 오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P부인은 거지 중에서 비교적 몸이 깨끗한 사람을 붙들고 크리스마스 저녁에 벽돌집으로 자신이 나눠준 자선표를 들고 오라고 했다.

크리스마스 저녁, P부인 집 문어귀에는 해도 지기 전부터 절름발이, 곰배팔이, 소경 등 각양각색의 거지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P부인은 약속한 7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문을 열었다. 거지들은 여러 달, 여러 해, 혹은 생전 처음 더운 물에 비누세수를 해보았다. 속옷 한 벌씩 얻어 입고, 눈부신 식탁에 둘러앉아 기름진 흰 이밥과 갈비 곰국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P부인은 과자도 노나 주고, 차도 주고, 이야기도 하고, 피아노도 쳐주며 밤늦도록 거지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사진사를 불러 사진까지 찍고 나서야 거지들을 돌려보냈다. 거지들은 흐느껴 울며 연방 허리를 굽실거리며 고마움을 표했다.

거지들이 돌아간 후 P부인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이렇게 기쁘고 의미 있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는 처음이라고 감격의 눈물까지 흘렸다. P부인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이며 자랑할 것을 기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P부인의 가슴 속에는 뜻하지 않은 분노의 불길이 폭발했다. 자기 몸뚱이처럼 끔찍이 아끼는 자동차 안에서 어젯밤 왔던 거지 중에서 가장 보기 흉한 늙은 거지가 얼어 죽은 탓이었다.》

천사의 분노는 당시 크리스마스의 가식적인 자선 행위를 꼬집는 이야기다. 이처럼 크리스마스는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상업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P부인의 가식적인 자선 행위조차 아쉬울 정도로 자선의 손길이 많이 줄어들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탄신의 본래 의미를 되새기고 한번쯤 소외된 이웃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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