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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930년대 보통사람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 2. 연애 문제

2011-03-05

신문에는 주로 사회적인 현상이나 특이한 사건, 범죄 등 보통 사람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가 실린다. 하지만 1930년대 신문들은 저마다 독자 고민 상담 코너를 운영했다. 조선일보에서는 ‘어찌하리까’라는 제목의 독자 상담코너를 운영하며 가정 문제와 연애 문제, 진로 문제 등에 대해 상담해줬다. 1930년대 보통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 두 번째는 연애 문제이다.

연애문제 1. 삼각관계
- 조선일보, 1933년 9월 10일 기사
저는 금년 이십 세 처녀입니다. 십구 세 때 어머님과 제가 합의하여 어떤 청년과 약혼을 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성과 사랑의 속삭임은 조금도 없었고 그저 약혼하고 어느 때든 여건이 되면 결혼식을 거행하자고 할 뿐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약혼을 한 후 우연한 기회에 다른 남성과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남성과 자주 접촉하다보니 그에게는 제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 남성도 저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는 남모르는 사이에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물론 약혼한 남성보다 현재의 그 남성이 저의 마음에 드는 까닭에 저는 모든 것을 희생하였으나 어머니는 어쩐지 재미없다고 하시면서 그 남성을 거절합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요. (평양 일 여성)

이 고민에 대해 C 기자는 제도에 구애됨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되 반드시 부모를 설득하라고 조언했다.

1930년대 연애가 요즘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2011년 현재 20대 청춘들은 연애를 하면서 결혼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데 반해 당시는 연애를 결혼의 전초전처럼 생각했다는 것이. 요즘은 남자든 여자든 30은 넘어야 결혼 생각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당시는 10대 후반이면 꽉 찬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에 있어서는 본인의 의사만큼이나 가정의 동의가 중요했다.

연애문제 2. 정략결혼

남녀 사이에 부모가 끼어들어서 발생하는 고민도 많았다. 요즘에는 부모가 결혼을 강요하더라도 상대방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1930년대에는 결혼 상대자를 정해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 조선일보, 1933년 2월 16일 기사
저는 금년 18세 된 소녀이옵니다. 농촌에서 자라나서 그날그날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집에서는 재래의 인습으로 부모가 그랬는지 가세가 극빈하야 그랬는지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나 근동에 사는 한씨 집에서 돈 90원을 저의 부모한테 주고 저를 그 집에 허락한 몸을 만들었답니다. 그러나 저는 부모의 슬하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자라든 중 작년에 와서 그 한씨 집으로부터 결혼 신청이 왔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크게 눈을 떠 살펴보니 저의 일생을 의지할 사람은 13세로서 저보다 만 4년이나 연하의 소년일 뿐 아니라 농촌에서 자라나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때 가세가 극빈한 만큼 90원이란 돈도 없고 하여 그때 온갖 사정을 다하여 금년에 결혼하기로 하였습니다. 기자 선생님! 돈 못 낸다고 나이 어린 소년과 결혼하여 일생을 지냄이 좋을까요? 저는 지금 생각하는 것은 죽음 두 글자 밖에 없습니다.

이 고민에 대한 답변은 아래와 같다.
결혼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감정이 맞고, 일생을 같이 지낼만한 믿음이 생긴 후에야 비로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결혼한 뒤 며칠을 못가서 이혼을 하니 마니 불화가 생기는데, 얼굴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몸을 바치게 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하지 못할 일입니다. 더욱이 소나 돼지를 흥정하듯이 90원이란 돈 때문에 팔려가니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연애문제 2. 동성연애
- 조선일보, 1931년 11월 5일 기사
벌써 해를 거듭하기 얼마인지 모릅니다. 내가 동성연애로 그렇게도 사랑하든 동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애는 집안이 가난하고 나는 넉넉해서 그 애의 학자를 대어주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내가 그 애에게 학자를 대어줌으로써 그 애에게서 무슨 은혜 보답을 받으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우정에 끌리는 마음에서 수년 동안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애도 내가 없으면 죽을 듯이 덤비고 나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 애를 지극히도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모 전문학교를 다니는 어떤 남자와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나를 퍽도 사랑하였고 또 나도 그를 퍽 사랑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끊으려고 하나 끊을 수 없는 무형의 정서가 엉킨 사랑의 줄이 엉켜 매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의 태도가 이상하였습니다. 그리해서 잘 알고 보니 내가 돈 있는 것을 이용해 가지고 그 두 사람은 서로 깊게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둘도 없이 사랑하던 그 남자와 내가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던 동모와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래 저는 남들에게 이용당한 여자가 되고 결국은 실연의 쓰린 가슴을 태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는 수 없이 그 애를 데리고 금강산에 갔다가 그 애 보는 앞에서 구룡연 굽이치는 물속에 풍덩 빠졌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사람에게서 구조되어서 다시 살아나기는 하였습니다만 학교에도 가기 싫고 세상이 귀찮기만 해서 다시 죽고 싶기만 하오니 이 일을 어찌했으면 좋을는지 기자 선생님의 판단을 가르쳐 주십시오. (시내 일 여독자)

동성애와 관련된 사연에 대해서는 실연에 울고 있을 것만이 아니라 힘내라는 조언의 답변밖에 없었다. 결국 어찌됐든 간에 좋다는 사람끼리 좋아하게 놔두고 힘내서 자신의 할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당신의 순정도 몰라주고 배반한 남자와 진정한 우정도 모르고 애인을 빼앗은 두 사람은 그야말로 모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오죽이나 안타까워서 구룡연 굽이치는 물에까지 빠졌겠느냐마는 가는 사람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니, 버리고 가는 그 사람들을 가는대로 내버려두십시오. 그리고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공부나 오락, 독서 등 좋아하는 분야에 힘을 써서 그 아픈 옛 기억을 깨끗이 청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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