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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930년대 보통사람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 3. 진로 문제

2011-03-12

신문에는 주로 사회적인 현상이나 특이한 사건, 범죄 등 보통 사람과는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가 실린다. 하지만 1930년대 신문들은 저마다 독자 고민 상담 코너를 운영했다. 조선일보에서는 ‘어찌하리까’라는 제목의 독자 상담코너를 운영하며 가정 문제와 연애 문제, 진로 문제 등에 대해 상담해줬다. 1930년대 보통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 세 번째는 진로 문제이다.

진로문제 1. 학비 문제
- 조선일보, 1933년 1월 8일 기사
호소할 데 없는 저의 애원을 선생님께 올리나이다. 저의 고향은 전남의 한 어촌이고 지금은 서울서 모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가정 사정으로 인하야 상급학교 진학을 못하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까, 말까? 큰 고민이옵나이다.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 어촌동무들과 서로 손을 마주잡고 원기 있게 일을 하여 갈까 하는 생각도 어느 때는 퍽이나 간절합니다. 그러나 또 어느 때는 인생의 꽃이라고 할 만한 이 20세의 젊은 시기를 이용하여 배우지 못하면 배울 시기가 드물까 합니다. 여기에 설상가상 격으로 또한 어려운 문제가 거듭하여 생기게 되니 기가 막혀 한숨의 눈물만 흘리며 방황하고 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저에게는 동생이 있는데 보통학교를 2~3년 전에 졸업하고 한없는 원한을 품고 하소연 할 때조차 없어 때때로 저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는 배움에 주려 울고 있다는 기막힌 말이 씌어 있었습니다. 저도 못 배우게 되어 남모르게 이만치나 애를 태우는데 그 아이의 마음이 저의 가슴의 가시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리하여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볼까 하옵니다만 집으로 돌아가 원한을 품고 있는 동생에게 배움의 길을 못 열어줄 저의 책임을 생각할 때 어떻게 서울서 일을 하며 가정에서 한 5원씩 원조를 받아가면서 동생을 학교에 통학시키고, 저는 틈틈이 책이나 볼까 하온데, 문제는 어떻게 하여 일을 얻을까 이것입니다. 더욱이 서울에는 저를 지도하여 일자리를 구하여 줄 친구도 없습니다. 그러니 고향으로 갈까? 서울에 있어야 할까? 있으려면 어떠한 방법으로 일자리를 구하여야 할까?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어떠한 방침이 있을까? 이것을 좀 철저히 지도하야 주십시오. (시내 일 독자)

가난한 집안 학생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한다. 당시 이 고민에 대해 한 기자는 냉정하게 사회를 바라보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당신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누구나 배우겠다는 욕심은 다 가지고 있고, 또 취직하려는 마음은 누구든지 마찬가지다. 그러나 가정 형편으로 공부를 할 수 없고, 또 홍수같이 몰려드는 실업난은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경제문제 때문에 퇴학을 하고 서울에 남을까 시골에 갈까 고민한다지만 이것은 스스로가 결심해야 할 문제다.

또한 서울을 고집하지 말고, 시골에 있다 하더라도 공부도 할 수 있고, 사업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학교에서 중학 정도 공부한 만큼 어촌의 문맹을 위해, 어촌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서울에서 헛된 세월을 보내지 말고 하루라도 속히 고향으로 내려가서 고향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동생을 돌보아 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당시 농촌계몽운동이 활성화 되면서 사회는 서울만 고집하지 말고 농촌에도 일자리가 있다며 조언을 했다. 하지만 이 답변은 젊은이 입장에서는 차선의 답변으로 들렸다.

진로문제 2. 부모 부양과 이상 추구 사이의 갈등
- 조선일보, 1933년 2월 17일 기사
본인은 24세 무산 청년이온데 올봄에 모 전문학교를 졸업 후 어떤 선생님의 원조로 일본 모 대학에 유학하려 하옵니다. 그러나 저희 집은 극빈하여 타처에서 월급생활을 하시는 형님이 월급에서 약 20원 가량의 생활비를, 늙으신 어머님께 보내 연명은 하시나 홀로 계신 늙은 어머님의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본인이 취직을 한다면 생활의 심각한 곤궁은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홀로계신 늙은 어머님께는 얼마나 위안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본인의 장래를 놓고 볼 때, 좋은 유학 기회는 다시 본인을 대하지 않고 영영 이별이 될 것입니다. 오십이 넘으신 늙은 어머님의 쇠약한 눈물을 씻어 드릴까요? 그렇지 않으면 본인의 장래를 위하여 쇠약한 운명에서 헤매는 늙은 어머님을 방관하고 유학의 길을 떠날까요? 어머님께서는 눈물겨운 얼굴로 좋은 기회를 잃지 말고 유학의 길을 떠나라 하십니다. 그러나 본인이 3~4년 후에 졸업하고 귀향할 때까지 늙은 어머님을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너무도 무정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젊은 사람들이 번민하는 큰 문제이오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삼청동 고민생)

이 고민에 대해 C 기자는 ‘어려운 살림에 고생하는 늙으신 어머님을 두고 차마 먼 길 떠나서 오랫동안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인정 때문에 번민과 기로에서 헤매고 있지만, 한 번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누구나 공부를 하고 싶어도 재정문제나 또는 재정은 있는데, 능력 부족으로 공부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게다가 돈이 없어 공부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는데, 원조를 해준다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고 조언했다.

진로문제 3. 입학시험
- 조선일보, 1934년 7월 20일 기사
저는 지금 부내 모 중학교 오 년 생이고 열여덟 살 난 소년입니다. 이번에 학교를 졸업하고도 상급학교에 입학하고자 생각합니다. 부모를 위해서, 나아가서는 사회를 위해서 일해 보겠다는 것은 항상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저는 본래 마음이 퍽 약합니다. 어제 결심했든 것도 오늘은 그만 풀려버리고 마는 마음 악한 아이입니다. 그런데다가 근래에 와서는 저의 마음이 돌변했습니다. 공부하기가 점점 싫어지고 게으른 마음이 항상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저는 매일 놀다시피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쓸데없는 공상만 자꾸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 괴로움도 없는데 쓸쓸해지기도 하며 번뇌하기도 합니다. 이래서야 어찌 상급학교에 갈 수 있으며 사회를 위하여 일하여 볼 사람이 되겠습니까? 혹 신경쇠약은 아닐까요? 저는 좀 더 마음을 굳세게 가지고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1930년대 학생들도 공부가 안 되면 신경쇄약이 아닌가 하고 일종의 건강염려증을 보였을 정도로 입학시험은 치열했다. 초등학교가 3:1이고, 중등학교가 10:1, 명문학교는 100:1을 상회했다.
이에 대해 조언자 기자는 이렇게 조언했다.
옳습니다. 당신의 말과 같이 장차 큰일을 할 사람, 큰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당신으로서 목적지만을 바라보고 돌진해야 할 이때에 번민으로 날을 보낸다는 것은 안 될 말입니다. 몰론 당신의 나이 열여덟이고 학년이 또한 중학교 오학년이매 다소간 번민하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나 그것도 정도 문제일 것인데 당신은 좀 심한 편인 모양입니다. 대체로 당신은 결심이 자주 변한다는 점으로 보아 성격이 신경질적인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 하면 당신에게는 특별한 수양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 공부하기 싫다고 신경질적인 관계로 일시에 너무 긴장했다가 그것이 어떤 조건 즉 입학난이라는 난관으로 말미암아 지레 단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만일 추측이 틀림없다고 하면 좀 더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도록 힘쓰고 당신에게는 무엇보다도 입학시험이 당면의 문제니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십시오. 다만 한 가지 ‘입학시험준비’에만 전력을 다하시되 그것도 ‘합격?’, ‘낙제?’ 하고 초초히 생각지 말고 소위 노력을 다한 후에 천명을 기다린다는 마음으로 황소처럼 느리게 그러나 건실히 뚜벅뚜벅 걸어 나가도록 힘써 보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지금이나 1930년대나 어른들은 공부가 잘 안 된다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의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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