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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죽궁 명인, 김병연 명장

2016-08-30

죽궁은 대나무로 만든 활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이 대나무로 활을 만들어 사용해 왔지만 대나무로 활을 만드는 전통 기술의 맥이 거의 끊어진 상태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대나무로 전통활을 만드는 기술을 보유한 장인은 김병연 명장이 유일하다. 사라져가는 전통 죽궁을 이어가는 김병연 명장의 삶을 소개한다.



스승의 말을 계기로 죽궁 복원에 전념
김병연 씨는 원래 취미삼아 국궁을 했다.
그러다 40대 초반이던 10년 전 스승이 활을 보여주는데 일제 강점기 때 만든 죽궁이었다. “죽궁을 복원해보라!”고 했다. 당시 성능이 우수한 물소 뿔로 만든 각궁은 3% 정도 밖에 사용되지 않고 있었고 개량형 양궁, 즉 카본을 재질로 찍어낸 양궁이 전체 활의 95%를 차지하고 있었다.
스승은 조선 최고의 병기였던 각궁은 양궁에 밀려 곧 각궁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각궁보다 성능은 약간 떨어져도 장점이 더 많은 죽궁을 복원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김병연은 그 때부터 죽궁 복원에 매달렸다.

각궁의 단점을 보완한 죽궁
각궁은 조선 시대에서 최고로 인정받았던 병기였다.
그러나 우수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비를 맞아 물에 젖으면 활이 뒤틀리기 때문에 화살이 정확하게 날아가지 않았다. 또 각궁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대량 생산이 불가능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해 개발된 것이 바로 죽궁이다.

죽궁의 본고장 대구
죽궁에 대한 얘기는 조선왕조실록 중종 때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병조판서 고형산이 죽궁을 바치면서 활의 세기가 목궁보다 갑절이나 강하고 각궁은 흙비에 파손되지만 죽궁은 파손되지 않아 전장에서 매우 유효함을 강조하는 부분이 나온다. 또 효종 때의 기록에는 죽궁의 본고장이 대구였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북벌을 계획했던 효종이 대구부사 이정이 보고한 죽궁에 관심을 보였고 이 때부터 대구에서 제작된 죽궁이 조선 후기까지 전국 팔도에 보급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지금 죽궁의 흔적을 찾아볼 길이 없다. 김병연은 반드시 우리 전통의 죽궁을 죽궁의 본산인 대구에서 복원을 하리라는 다짐을 하고 죽궁 복원에 전념한 끝에 복원에 성공했다.

2008년 다시 세상의 빛을 본 ‘죽궁’
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에 가서 가장 좋은 대나무를 찾고 대나무의 성질에 대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김병연은 2008년 쓸 만한 죽궁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죽궁이 김병연에 의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2011년에는 충남 천안에서 열린 31개국이 참가한 세계 민족궁 대축전에 나가 세상에 죽궁의 존재를 당당히 알렸다.

죽궁 보급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
죽궁 개발에 성공한 이후 김병연은 대금연주곡을 들으며 정신을 집중해 죽궁의 활시위를 당기는 특별한 사법, 즉 ‘병연사법’을 개발해 대중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도 잊혀진 죽궁을 다시 복원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죽궁을 알고 또 즐길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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