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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8.2㎞ 옛길 따라 600년 서울을 만나다, 북악산 서울성곽 걷기

2010-11-02

도시의 경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도로의 표지판이 아니라면 그 경계를 안다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달랐다. 바로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1396년 태조 5년 때 축조된 서울성곽은 조선의 수도 한양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였다. 성곽의 총길이는 18.2km, 그 중 북악산 서울 성곽길을 따라 서울의 숨은 이야기를 만나본다.

북악산 서울성곽

북악산 서울성곽은 군사지역으로 신분증을 지참하여야만 탐방이 가능하다. 또한 군사시설보호구간이므로 아무 곳에서나 사진촬영은 불가하다. 1968년 북한특수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한 1.21사태 이후 북악산 길은 굳게 잠겨 있었으나 40년이 지난 2007년 개방되었다. 오랫동안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터라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북악산 서울성곽 걷기의 시작은 종로구 와룡공원 위쪽에 위치한 말바위 쉼터에서부터다. 와룡공원 입구, 표지판을 따라 약 20분정도를 걸으면 숲 속에 통나무로 만든 집이 보인다.

숙정문

신분증을 맡기고 본격 산행에 나서면 숙정문을 지나, 촛대바위, 곡장, 청운대, 북악산정상인 백악마루를 지나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약 2.2km의 길이 이어진다. 사대문 중 하나인 북대문에 해당하는 숙정문은 본디 소지문, 유교의 가치관인 인, 의, 예, 지, 신 중 하나가 들어간 것이다. 문루에서 숙정문의 지붕을 올려다보면 가지런히 놓여있는 동물 조각상이 눈에 띈다. 잡상이라 하는 이 조각상은 잡귀를 막거나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해 올려놓았다. 홀수로만 올려놓으며 개수가 많을수록 건물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성곽과 역사

숙정문에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촛대바위는 경복궁과 일직선상에 놓인 바위다. 정기가 흐르고 기운이 흐르는 영험한 바위였기에 일제시대에 쇠말뚝을 박아놓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쇠말뚝을 뽑고 나무목으로 표시해두었다. 다음 장소인 곡장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시설로 성곽의 일부가 외곽으로 돌출돼 있다. 경치가 일품이지만 사진촬영은 아쉽게도 금지다. 청운대에선 얼기설기 지은 초기의 성곽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성곽에 사용된 돌에는 기술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에도 건축실명제가 있었던 셈이다.

북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아픈 역사의 현장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바로 1968년 1.21 사태 현장이다. 나이든 노송이 몸이 구부러진채 몸통 사방에는 구멍이 나있다. 이름 하여 1.21 사태 소나무이다. 이 소나무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남겨둔 것이다. 이 곳을 지나고 나면 마침내 해발 342미터 북악산 정상이다. 이곳에서 보면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위치에 경복궁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작은 산임에도 악자가 들어간 것은 경복궁을 바로 뒤에서 보호하는 주산이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되어 그러한 것이다.

보석같은 길

북악산 서울성곽의 마지막 코스는 창의문이다.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에 있는 작은 대문으로 이곳의 계곡이름을 딴 자하문으로 더 많이 불린다. 자하문은 ‘자줏빛 안개’란 뜻으로 서울시내 9개 문 가운데 유일하게 24시간 개방돼 있고 작은 정자도 늘 개방돼 있어 북악산 서울성곽의 피로를 씻어 준다. 서울을 감싸고 있는 서울 성곽을 걷다보면 상상도 못했던 밀림과 천연식물, 야생노루 그리고 역사까지 만나볼 수 있다. 서울 성곽길은 6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서울의 보석 같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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