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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근대항구도시 2 - 전북 ‘군산’

2015-08-29

지난 주 인천에 이어 우리나라 근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를 찾아간다. 전라북도 ‘군산’의 역사, 문화적 배경과 함께 의미 있는 명소들을 소개한다. 매일경제 신익수 여행전문기자와 최예선 작가가 함께 한다.

1899년 군산항 개방
군산항은 1899년 일본의 의지에 의해 개방된다. 이후 일제 강점기 동안 군산은 일본으로의 물자 조달 창구로서의 역할을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 군산의 도로들이 넓은데 1900년대 초부터 자동차 운송 도로로 사용하기 위해 도로를 넓게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물자가 왕래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던 시절을 얘기하듯 웅장하고 큰 옛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히로스가옥 등 일본인 거주 가옥들 많아
1900년대 초, 일본은 쌀 등 물자 부족에 허덕였다. 김제, 만경 평야 등 좋은 농경지가 많은 군산에서 많은 쌀이 수확됐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미곡을 일본으로 운송하는 통로로 군산항이 주 역할을 했다. 개항과 함께 일본인들이 많이 군산으로 건너와 큰 농지를 소유하고 소작농을 부려 수확한 미곡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대지주였던 일본인들은 큰 건물을 지어 거주하며 그 주변에 미곡 창고를 만들어 곡식을 보관했는데 아직도 그런 건물들이 꽤 남아있다. 히로스라는 일본인 농장주가 살았던 2층 건물 히로스가옥은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건물 뒤에는 2층 콘크리트 건물이 있는데 창고로 쓰이던 것이다. 웅장한 일본식 정원도 볼 수 있다.



일본식 가옥으로 구성된 숙소도
군산에는 일본식 가옥들이 모여 있는 여행자 숙소도 있다. 마을처럼 형성된 이곳에서 묵을 수 있다. 또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며 곳곳을 구경할 수 있다. 군산은 오르막길이 없고 대부분 평지이기 때문에 자전거로 둘러보기 좋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의 조선은행 다음으로 큰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이 남아있다. 지금은 개화기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역사적 의미 있는 건물들 많아
군산 곳곳에는 근대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건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화호리마을’에는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이영춘 박사’가 농부들을 위해 의술을 펼치던 건물, 미곡 창고 등 역사의 이야기가 배어있는 건물들이 많은데 방치돼 있어 스러져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일제의 수탈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 한국인들의 삶이 녹아있는 건물, 유적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보전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 군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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