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삭감 등의 고통 분담을 통해 동료를 거리로 내보내지 않고, 한 명의 젊은이라도 더 뽑는 ‘일자리 나누기 운동’ 일명 ‘잡 셰어링(Job Sharing)’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잡 셰어링을 통해 극심한 경영 불확실성으로 인력 수급 계획도 못 내놨던 기업들이 정규직이나 인턴 채용에 나서며 얼어붙었던 고용시장이 깨어나고 있다.
사내기금 깨워 잡 셰어링 불 지피기
한국 정부는 다음 달 1일부터 3조원 이상의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잡 셰어링’에 투입할 방침이다. 1983년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위해 기업들이 이익금을 출연해 설립한 ‘사내근로복지기금’은 그동안 재원 충실화를 위해 지출이 제한됐지만 잡 셰어링을 일자리 보전의 해법으로 생각하는 한국 정부는 한시적으로 사내기금을 활용하기로 했다. 정부가 잡 셰어링에 앞장서면서 요즘 한국에는 잡 셰어링이 국민운동으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일자리 나누기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잡 셰어링의 다양한 유형
잡 셰어링을 말할 때, 세계는 독일 폭스바겐(Volkswagen)의 사례를 자주 언급한다. 폭스바겐은 1984년 생산량이 줄자 일시적으로 주 28시간 근무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임금은 16% 삭감됐지만 대량 해고는 피할 수 있었다. 2006년 구조조정 위기에 놓인 밀폐용기 제조업체의 경우에는 교대제 전환을 통해 인력을 모두 흡수했고, 학습기간을 늘려 높인 경쟁력으로 신규인력을 추가로 채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위기 때 학습시간을 늘리는 효과도 있다.
한 제강업체의 경우에는 사업 확장과 생산량 증대를 목적으로 4조 2교대제를 도입하면서 상당수 인원을 채용했다. 연간 학습시간은 2007년에는 20시간이었는데 작년까지 240시간으로 늘려서 임금체계를 유연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제조업체의 경우에는 1인 업무를 2명이 나누도록 하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창출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다. 그리고 단시간 근로제, 일명 파트 타임제를 개발해서 전일제 근무가 곤란한 인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하고 작업량이 많은 시간대에만 투입되는 단시간 근로자를 채용해서 고용을 늘리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한국에서는 교대제 개편 외에도 성과급ㆍ임금피크제 등 임금 유연성 확보와 모기업과 협력사간의 상생, 내부 역량 강화 등 다양한 유형의 잡 셰어링 사례가 나오고 있다.
줄인 임금만큼 신규 채용 늘리나?
지금의 변화가 변혁의 큰 물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줄인 임금에 대한 신규 채용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요즘 한국 기업들이 잇따라 임금 삭감과 동결 선언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은 최대 28%까지 삭감됐는데, 신규 채용 시장은 잠잠하기만 하다. 물론 이 달부터 삼성그룹이 신입사원 모집에 나서고, LG 등 다른 대기업의 인력 계획도 윤곽을 드러내면서 상황은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특히 30대 그룹의 신규 채용 발표를 두고 아직까지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취업 준비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한다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노조와 상대하기 어려워 만만한 취업 준비생들을 상대로 임금 수준을 미리 못 박아 두겠다는 행위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잡 셰어링 성공을 위한 노력
잡 셰어링 성공의 조건은 변화이다. 선진국 대비 과도한 대졸 초임, 경직된 임금 체계,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지 못한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한국형 잡 셰어링도 성공할 수 없다. 또한 일시적인 고육지책을 넘어 더 큰 경제 성장과 고용 안정을 위한 고차원적인 방안도 필요하다. 잡 셰어링이 경제 위기를 돌파하는 해법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경제 주체들이 역량을 모아야 한다. 임금 삭감으로 노동자들만 고통을 감내하고 실질적인 일자리 나누기와 일자리 창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잡 셰어링은 헛구호로 끝날 뿐이다. 지금은 실천과 협력이 중요한 시기로 잡 셰어링 기업에 대한 세제 및 정책자금 지원, 임금 삭감 근로자에 대한 보전수당 지급, 그리고 또 고용유지지원금 증액 등에 가속도를 붙여야 되는 상황이다. 본격적으로 바람을 타기 시작한 잡 셰어링은 자기주장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의 힘을 모은다면 10년 전 금 모으기에 필적하는 또 하나의 위기 극복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