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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부활한 바둑의 신 - 프로바둑기사 이창호 9단

2005-03-11

부활한 바둑의 신 - 프로바둑기사 이창호 9단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바둑의 최강자, 이창호 9단에게 요즘 안티카페가 생겼다. 그것도 한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하지만 그 속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일반 안티 카페들과는 차원이 다른 이창호 9단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팬 카페라는 사실을 단박에 눈치채게 된다.

인간 이창호이기를 거부하고 마땅히 바둑의 신의 자리로 복귀해야 하는 이창호를 격려, 칭송하기 위해 생긴 안티 카페, 역설적이기에 더욱 기발한 팬카페가 생긴 것은 물론이고 최근 각종 포탈 사이트 인물 검색어 상위를 기록할 정도로 ‘신드롬’으로 자리잡은 이창호 9단!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역사에 길이 기록될 '상하이 대첩'

지난 2월 26일,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진 제6회 농심배 세계 바둑 최강전에서 이창호 9단이 중국 왕시 5단에게 257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며 조국 대한민국에 세계 바둑 최강국 타이틀을 바쳤다.

물론 세계 최강, 이창호 9단이 중국 기사를 꺾은 것은 그리 큰 뉴스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은 상황이 달랐다. 이창호 9단을 제외한 한국 대표 4명이 모두 초반에 탈락해버린 것이다. 그는 홀로 중국과 일본 기사 5명과 싸워야만 했다. 만약 그가 한 경기라도 진다면 한국의 대회 6연패는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창호 9단은 일본과 중국의 정상급 선수를 한명씩 꺾으며 승전보를 이어갔다. 그리고 결국 중국의 마지막 선수인 왕시 5단에게 흑으로 불계승을 거두며 한국의 우승으로 이끌었다. 서로 기풍이 다른 정상급 기사들에게 매일 계속된 속기 바둑에서 5연승을 거둔 것은 경이적인 일로 그야말로 이창호 9단 혼자 골을 막아내고, 드리블하고, 상대를 제치고, 결승골까지 집어넣은 원맨쇼를 한 셈이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대회 6연패는 물론 첫대회부터 빠지지 않고 출전한 이창호 9단은 14연승을 기록, 단체전 연승기록이었던 중국 녜웨이핑 9단의 11연승을 훨씬 뛰어넘는 대기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최악의 슬럼프

한편의 드라마같은 역전승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본 바둑팬들은 이창호 9단에게 대국수, 기성, 10단 등의 지위를 줘야 한다며 그의 투혼에 기뻐하며 열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창호 9단이 최근 각종 언론매체로부터 슬럼프라고 지적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1승 5패란 역대 최악의 성적도 그렇거니와 중국 기사와의 시합에서 이창호 9단이 단수를 못 보는 어이없는 착각으로 패하자 슬럼프설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승부에서 당연히 질 수도 있지만 바둑 내용이 전혀 딴 사람 같았다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인내와 기다림의 이창호는 실종된 채 강공과 욕심으로 일관했고, 그 와중에 치명적인 실수까지 있었다. 마지막 1분 초읽기에 몰린 그는 형세분석과 끝내기 수순을 번갈아 생각하다가 196의 곳이 이미 이어져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195로 뒀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같았으면 그런 착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 1분만 남긴 상황에서 정확한 끝내기로 역전한 바둑이 얼마나 많은가. 그는 확실히 슬럼프였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겠죠..

이창호 9단은 8살 때부터 바둑 외길을 걸었다. 온종일 바둑만 생각하고 잠잘 때도 바둑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는 정밀도가 지극히 뛰어난 '바둑 컴퓨터'가 되었다. 그런 그가 올해 두 달간 1승5패라는 치욕의 전적을 기록했다.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모두들 걱정스런 눈길로 지켜봐야만 했다.

이창호 9단은 몇 년 전부터 책에 푹 빠져들어 서치(書痴)라는 별명을 새로 얻었다. 그는 고서는 물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며 밤을 새웠다. 폭탄주도 마셔봤다. 세상을 알고 싶었다.

이창호 9단은 바둑을 두느라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몇 년 전에 자신이 또래들과의 어떤 차이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프로기사가 아닌 사람들과는 늘 화제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바둑 밖의 세상에 눈을 돌린 것이다.

인생을 알면 승부가 약해진다. 승부는 무심하고 비정하다. 그러나 인생을 생각하면 유심하고 유정해지기 마련이고 이로 인해 고도의 집중력이 조금만 분산되면 간발의 차로 무릎을 꿇게 된다.

그래도 이창호는 책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잃는 것이 있다면 얻는 것도 있지 않겠냐고..

어깨너머로 바둑 배운 천재소년

그렇게 30평생을 바둑의 외길을 걸어온 이창호 9단이 바둑돌을 처음 만진 건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할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바둑 실력으로 가게에 들락거리며 5~6급을 두던 젊은이와 맞두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는 손자의 손을 잡고 기원에 갔다.

일취월장, 괄목상대란 표현 그대로 급성장해가는 이창호는 기원 원장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고, 고 전영선 7단을 거쳐 조훈현 9단의 내제자가 되면서 본격적인 바둑의 길로 접어든다.

그 후, 이창호는 11세라는 어린 나이로 프로에 입단하면서 바둑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곧이어 유망주 유창혁을 쓰러뜨리고, 프로 본선 첫무대에서 당시 조훈현에 이은 한국 바둑의 2인자, 거함 서봉수를 격침시키면서 천재소년임을 과시했다.

조훈현도 놀란 연습벌레

스승 조훈현 9단은 이창호를 번뜩임이 감춰진 '내적천재' 라고 했다. 이창호 9단은 분명 바둑천재지만 바둑 공부에 한 치의 게으름이 없었다.

꼬마 이창호가 조훈현 9단의 내제자로 들어갈 당시 서재에는 천권이 넘는 바둑책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창호는 매일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며 한권 한권 스스로 독파했다. 한번은 조훈현 9단이 새벽 5시쯤 화장실을 다녀오다 제자의 방에 불이 켜져 있어 불을 끄기 위해 가려다 바둑돌 놓는 소리에 놀랐다고 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게 맞다.

겸손한 1인자

이창호 9단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도 항상 겸손하다. 십대 때부터 숱한 타이틀을 따도 크게 환호할 줄 모르고 입가엔 희미한 미소만 흘렀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 열심히 배우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대신한다. 중국에서조차 세계바둑의 1인자 이창호가 더 위대한 것은 인품이라고 존경심을 표시한다.

최고의 스타로 떠오른 이창호가 어느 날 한국기원 한쪽 구석에서 허름한 중년남자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살인적 대국 횟수에 시달리던 이창호와 태평하게 바둑을 두고있는 낯선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모두들 호기심의 눈길로 바라봤는데 알고보니 그는 아무도 아니었다. 그냥 이창호와 바둑을 두고 싶어 무작정 찾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창호는 거절하지 않고 그와 진지하게 바둑을 두었던 것이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이유는 십년이 넘도록 세계 1인자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한결같이 '겸손한 1인자'로 행동해 온 것 때문이 아닐까.

열심히 최선을 다하기, 즐기기

이제 이창호 9단도 30대다. 최철한 9단, 이세돌 9단 등 후배기사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그는 뜻밖에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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