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안 좋아 병원에 가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신경을 좀 쓴 날은 가슴이 울렁거리고 통증도 오곤 합니다. 어떻게 해야하나요? 병원에선 괜찮다고만 하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 필리핀 세부, 60대 주부
한의학에서는 간, 심, 비, 폐, 신의 오장이 각각 주관하는 감정이 있다고 본다. 간장은 분노를, 심장은 기쁨을, 비장은 생각을, 폐는 슬픔을, 신장은 두려움을 주관한다. 이 중 어느 한 정서가 지나치면 그것을 주관하는 장기를 상하게 하는데 장이 상하면 몸에 병이 생기게 된다.
한 예로 지나치게 화를 내면, 간이 상하게 되는데 간의 기운이 평형을 잡지 못하고 위로 치솟으면 비위의 기능을 저해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소화가 안되고 답답한 느낌이 들게 된다.
화병
평균수명이 늘면서 60대는 이제 노인에도 못 끼지만 노년기임은 분명하다. 노년기에는 심신의 노화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그 자체로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의 상실 등으로 인하여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인체 생리 기능의 퇴화로 인해 스트레스의 저항도가 낮아져 작은 스트레스에도 몸이 반응하게 된다.
심리적인 쇼크나 정신적인 갈등에 의해 일어나는 화병은 분노, 걱정, 불안 등의 감정과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자율신경의 조절능력이 상실되면서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하거나 식욕부진을 느낀다. 목에 무엇이 낀 것 같은 느낌을 느끼고 뒷목이 항상 뻐근하며, 전신에 통증을 느끼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또한 화병으로 힌해 식은땀을 흘리고 흉통을 느끼며 머리가 자주 아프고 어지럽거나 별일 아닌데도 깜짝깜짝 잘 놀란다. 며칠동안 잠도 오지 않으며 심지어는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아도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듣는데, 이런 증상이 한의학적으로 화병이다.
화병 자가진단
화병은 한국인 고유의 질병이면서도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과 구별이 어려웠으나 지금은 화병에 대한 진단 기준이 있어 자가진단이 가능하다. 화병 자가진단을 통해 자신의 현재 상태를 알아볼 수 있다.
<화병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
- 가슴이 매우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다.
- 숨이 막히거나 목, 명치에 뭉쳐진 덩어리가 느껴진다.
- 열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다.
-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거나 뛴다.
- 입이나 목이 자주 마른다.
- 두통이나 불면증에 시달린다.
-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자주 느낀다.
- 마음의 응어리나 한이 있는 것 같다.
- 뚜렷한 이유 없이 화가 나거나 분노가 치민다.
- 자주 두렵거나 깜짝깜짝 놀란다.
-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 삶이 허무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위의 화병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 중에서 하나라도 6개월 간 지속된다면 전문의와의 상담이 필요하며 화병에 해당된다면 심장내과만 갈 일이 아니라 정신과에 가서 상담해 보는 것도 좋다.
마음을 다스리는 음식
한방에서는 ‘의식동원’이라 하여 ‘좋은 음식과 좋은 보약은 그 근원이 같다’고 했다. 화병은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에도 좋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좋다.
- 차
불안한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데는 따뜻한 차 한잔이 좋다. 예로부터 차는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킬 뿐 아니라 잠을 쫓는 등 여러 가지 몸에 좋은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은은한 향이 나는 차는 기분전환과 정서안정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녹차는 비타민 A와 C, 토코페롤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기를 다스리고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서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며 편안한 상태를 유지시켜준다. 허브차는 향긋한 풀 냄새가 나 머리를 맑게 해주고 날카로워진 신경을 안정시켜 두통이나 불면증 해소에 도움을 준다.
라벤더, 카모마일, 세이지 차는 기분전환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로즈힐 차는 레몬의 20배에 달하는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 피로를 풀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제격이다. 홍차에는 카페인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뇌를 자극해 정신을 맑게 하는 작용을 한다.
- 견과류, 호두와 아몬드
견과류는 진하고 고소한 맛이 있으며 씹어 먹기 때문에 지치고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여 준다. 호두와 아몬드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오메가-3계 지방산이 다량 함유되어있다.
오메가-3계 지방산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어 두뇌 활동을 왕성하게 만들고 피부 노화를 예방하기도 한다. 오메가-3계 지방산은 호두와 아몬드 외에 참깨, 호박씨, 해바라기씨, 은행씨 등 견과류에 다량 함유되어 있다.
- 우유
마음이 산란하고 불안할 때는 따뜻한 우유를 마시는 것이 좋다. 우유는 지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필수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이 함유되어 있어 신경이 곤두설 때 좋다. 간혹 불면증으로 인해 잠들지 못하는 날에 따끈한 우유를 마셔 잠을 청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우유에 함유된 트립토판 때문이다. 우유뿐 아니라 치즈,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등의 유제품도 신경안정제 역할을 한다.
- 바나나
바나나에는 탄수화물, 트립토판, 비타민 B6, 무기질 등 신경안정에 도움을 주는 영양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바나나는 긴장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천연 신경안정제로 우유와 마찬가지로 불면증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 아보카도 역시 바나나만큼 심신안정에 도움을 주는 과일이다.
- 탄수화물, 국수와 감자
국수나 감자 속에는 탄수화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탄수화물 역시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영양소로 세로티닌이 많이 만들어지도록 뇌를 자극함으로써 불안한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려준다.
빵이나 시리얼, 파스타도 탄수화물이 많이 든 음식들로 섭취하면 포만감이 느껴지면서 마음도 든든해진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기 위해 과식하고 폭식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 초콜릿
동의보감에는 초콜릿에 대한 내용이 없지만 초콜릿의 단맛과 쓴맛을 한방적으로 풀어 볼 수는 있다. 초콜릿의 단맛은 몸 전체와 머리로 가는 경락을 열어 기운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뇌의 움직임을 활성화시켜 피로를 풀어주고 신경을 부드럽게 한다. 피로할 때나 안정이 잘 안될 때, 신경과민일 때 초콜릿을 먹으면 기분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초콜릿의 쓴맛은 심장을 편하게 해주고 심열을 내려주기 때문에 심란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정신적으로 공상이나 망상 등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하며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 속이 복잡한 경우나 화가 나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도 초콜릿이 도움이 된다.
- 매운 음식
간혹 매운 음식을 먹으면 답답하고 울적한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맵고 자극적인 맛 때문에 정신이 바짝 들면서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매운맛이 열과 땀을 나게 하고 맺힌 것을 풀어준다고 보고 있다. 매운 음식은 기운을 발산하는 성질이 있어 우울한 기분이 풀리게 된다.
서양 의학에서는 매운 맛이 혀의 통각 세포를 통해 뇌에 통증을 전달하고, 뇌가 이 통증에 반응해 자연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분비함으로써 스트레스가 풀리게 된다고 한다. 매운 음식이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위장이 약할 경우에는 삼가는 것이 좋다.
마음을 다스리고 좋은 음식이라고 해도 과하면 좋지 않다. 자신의 체질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섭취하면서 건강과 마음을 함께 다스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