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유난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사람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발그스레 홍조를 띤 얼굴은 생기 있고 건강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정도의 문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낮술 먹었느냐”, “얼굴에도 단픙이 들었네”라는 얘길 듣는다면 당사자로선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닐 것이다. 웰빙수첩, 오늘은 <미쓰 홍당무>라는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 안면홍조에 대해 알아본다. 중앙일보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와 함께 한다.
원인
하필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는 다른 부위에 비해 얼굴, 특히 양 볼에 혈관이 많이 분포돼 있어서다. 얼굴의 혈관이 확장되면 모세혈관을 통해 피가 많이 흐르면서 얼굴이 불그스름해지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안면 홍조가 오는 가장 흔한 원인은 정신적 긴장ㆍ스트레스ㆍ수치ㆍ부끄럼 등 정서적 요인으로 정서적 홍조증이다. 주로 얼굴ㆍ목 부위에 나타나고 땀ㆍ혈관확장증이 흔히 동반된다. 심리적인 갈등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이 당황ㆍ분노ㆍ흥분했을 때 이런 증상이 잦다. 이 경우 뜨거운 목욕ㆍ음식과 심한 운동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알콜도 안면 홍조를 부른다. 알콜 섭취에 따른 안면 홍조는 알콜의 분해 산물인 아세트 알데하이드의 혈중 농도가 높아진 결과다. 따라서 아세트 알데하이드 분해효소가 부족한 사람은 소량의 술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진다. 이런 사람에겐 절주가 유일한 약이다. 지속적인 알콜 섭취는 ‘주사비’ 즉, 딸기코를 부른다. 주사비는 만성적인 안면 홍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주사비는 반드시 술이 원인이 아니며 호르몬 이상ㆍ모세혈관 장애ㆍ스트레스 등 다른 원인으로 생길 수도 있다. 남성보다 오히려 20∼50대의 여성에게 더 흔한 질병이다.
발효 식품이나 식품 첨가제 등이 안면 홍조를 유발할 수도 있다. 뜨거운 음료나 매운 음식, 치즈나 초콜릿 등을 섭취 후 일시적으로 홍조가 발생되기도 한다. 일부 의약품의 부작용으로 안면 홍조가 오기도 한다. 고혈압약인 니페디핀ㆍ베라파밀, 심장병약인 니트로글리세린, 결핵약인 리팜핀 등이 이 부류에 속하나 이것 말고도 꽤 많다. 이 경우 원인이 되는 약을 끊으면 안면 홍조 증상이 금세 사라진다.
안면 홍조 대처법
안면 홍조로 고민인 사람은 자외선 차단에 유념해야 한다. 자외선으로 인해 생기는 피부 노화는 혈관을 지지하는 탄력 섬유를 파괴, 모세혈관을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면 홍조가 심한 사람은 햇볕이 잘 안 드는 가을, 겨울에도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면 홍조가 잦은 사람은 외출 시 자외선 차단 성분이 든 보습제를 가볍게 바르는 것이 좋다. 직사광선을 피하고 뜨거운 욕조ㆍ사우나ㆍ찜질방ㆍ심한 피부 마사지도 되도록 피해야 한다.
볼 마사지는 안면 홍조를 막는데 효과적이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갈 때는 미리 손바닥으로 볼을 가볍게 마사지해 얼굴 온도를 높여주는 것이 방법이다. 나들이할 때는 찬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얼굴만 가리는 것보다는 몸 전체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심한 운동이나 맵거나 뜨거운 음식을 멀리 하고, 난로의 열기를 직접 얼굴에 쬐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샤워나 세안 시엔 미지근한 물로 하고 마지막에 찬 물로 헹궈준다. 술을 마시면 혈관이 늘어나므로 자주 마시지 말아야 한다. 발랐을 때 따끔거리거나 자극적인 화장품ㆍ비누는 사용하지 않는다.
과거 피부과에서는 주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했다. 그러나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약을 오랫동안 얼굴에 바르게 되면 피부가 얇아지고 피부 밑의 혈관이 늘어나게 되어 안면홍조증이 발생한다. 최근엔 확장된 혈관만을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IPL(복합 파장 광치료기의 일종)과 레이저로 치료한다. 이미 확장된 혈관은 저절로 원상복구되지 않으므로 IPL과 레이저를 이용해 늘어난 혈관을 파괴하거나 줄인다는 것이다.
갱년기 안면 홍조
한국 여성의 평균 폐경 연령은 49.7세로 이들에겐 폐경 1, 2년 전부터 다양한 갱년기 증후군이 밀려오는데 이중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얼굴이 화끈거리는 열성(熱性) 안면 홍조다. 분비량이 크게 줄어드는 여성호르몬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체온조절 중추가 함께 자극 받아 체온이 순간적으로 오르게 돼 얼굴ㆍ목 등에 홍조가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홍조는 폐경기 여성의 초기 급성 증상 중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