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한국어 연구회 제공 ‘바른 말 고운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채비 사흘에 용천관(龍川關) 다 지나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에 나오는 ‘용천관’은 대중국 교류의 관문이었던 평안북도 용천(龍川)에 있던 객관으로,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맞이했던 곳을 가리킵니다. 결국 이 속담은 준비만 하다가 정작 해야 할 일은 못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지요.
이 속담에 나오는 ‘채비’는 ‘어떤 일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물건이나 자세 따위가 미리 갖추어져 차려지거나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겨울 채비에 바쁘다.’, ‘외출할 채비로 부산하다.’와 같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한자어인 ‘차비(差備)’에서 나온 것입니다. ‘차비’라고 하면 우선 ‘차를 타는 데 드는 비용’이라는 뜻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이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 ‘준비’의 뜻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원래 ‘차비’는 궁궐에서 특별한 일을 맡기기 위해 임시로 기용할 때 쓰는 용어였는데, 궁궐에 속해서 잡역을 맡아 하던 남자 종을 ‘차비노(差備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궁궐에서 물 끓이는 일, 고기 다루는 일 또는 반찬 만드는 일 등 여러 가지 일을 담당했습니다.
원말은 ‘차비’라는 한자어이지만 음운변화를 일으켜서 ‘채비’로 굳어진 형태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