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동사 가운데 ‘비치다’와 ‘비추다’를 서로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햇빛이 나서 환하게 된다’는 뜻으로 말할 때는 ‘햇빛이 비치다’와 ‘햇빛이 비추다’ 중에서 어느 것이 맞을까요?
이 경우에 ‘비치다’는 ‘어둠 속에 달빛이 비치다.’, ‘창문에 사람 그림자가 비쳤다.’와 같이 목적어가 없는 경우에 쓰고, ‘비추다’는 ‘달빛이 마루를 비춘다.’, ‘손전등을 방 안에 비쳤다.’와 같이 목적어가 있는 경우에 씁니다.
그런데 ‘비치다’와 ‘비추다’가 이와는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너무 바빠서 집에 얼굴을 비칠 시간도 없다.’라는 예문에서처럼 ‘비치다’가 ‘얼굴이나 눈치 따위를 잠시 나타낸다’는 뜻으로 쓰인다든지 ‘동생에게 결혼 문제를 비쳐 봐도 별 반응이 없다.’에서처럼 ‘의향을 떠보려고 슬쩍 말을 꺼내거나 의사를 넌지시 깨우쳐 준다’는 뜻으로 사용될 때는 ‘비치다’도 목적어를 가지게 됩니다.
반면에 ‘비추다’를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또는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과 같이 ‘OO에 비추어’라는 형태로 쓸 때는 ‘어떤 것과 관련해서 견주어 본다’는 뜻으로 사용되는데, 이 경우에는 목적어를 갖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비치다’와 ‘비추다’가 어떤 뜻으로 쓰이느냐에 따라 목적어를 가질 수도 있고 안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상황을 보고 잘 선택해서 쓰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