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정형외과에서 척추수술을 받으신 분이 밤에 잠을 안자고 주사를 놓으려 다가선 간호사에게 마구 욕을 하고 침을 뱉고 때리려고 하는 정신착란 증상이 생겼다고 어떻게 해야할지 봐달라고 하여 자문진료를 한 적이 있다. 이처럼 병원에서 수술을 받거나 입원하신 노인 분들 중에는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평소에 정신이 멀쩡하시던 노인 분이 갑자기 시간이나 장소를 구분하지 못하고, 주의력이 떨어지고 헛소리를 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런 경우에 가족들은 괜히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아서 뇌에 손상을 받게 했나보다, 드디어 치매증상이 생겼구나하고 걱정과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을 자주 경험하는데, 사실은 이런 증상은 치매 증상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생긴 정신착란 증상인데 이것을 의학적으로 섬망이라고 하고 반드시 치매와 구분해야 하는 중요한 증상이다.
섬망증상은 노인 분들에게 꽤 흔히 생긴다. 집에서 생활하시는 건강하던 노인에게서도 연 1% 정도에서 발생할 수 있고, 요양원에서는 평균적으로 15% 정도에서 발생하며, 병원 입원 노인의 경우에는 30-50%에서 발생할 수 있고, 중환자실에서는 70-90%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섬망의 주 증상으로 제일 두드러진 것이 주의집중력의 손상이고 이런 인지기능 저하 증상이 갑작스럽게 생기면서 증상의 변화가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변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시간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엉뚱한 답변을 하고, 말을 하는데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횡설수설하기도 한다. 또 심한 경우에는 “저 사람이 나를 붙잡아 가려고 한다” “나를 죽이려 한다” “나를 잡아 가두려 한다” 등의 피해망상도 생길 수 있다. 행동도 이상해져서 무언가에 놀란 사람 모양 안절부절 못하거나, 차분하게 있지 못하고 계속 앉았다 일어섰다하거나 어수선하게 왔다갔다하고, 눈에 보이는 물건마다 손으로 만지고 여기 저기 옮겨 놓는 등 부산한 행동을 하면서 주의가 산만한 행동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이와 반대로 주변 상황에 무관심해지고 표정이 없어지며 멍한 상태가 지속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앞에 아무 것도 없는 데도 불구하고 “거미나 뱀, 아니면 고양이, 쥐가 보인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서 나에게 무어라고 하셨다” “피부에 자꾸 개미가 달라 붙는다”는 등의 환청, 환시, 환촉 등의 지각장애를 보이기도 한다. 평소의 수면습관이 갑자기 변해서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반대로 낮에는 계속 잠만 자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증상이 수시로 변하는데 특히 낮보다 밤에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보기에 아침에는 비교적 차분한데 오후 늦게부터 이상한 증상이 뚜렷해진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증상이 계속되는 시간은 원인에 따라 대개 수시간에서 수일 정도 지속되지만 드물게 수년 동안 계속되기도 하고, 영구적인 뇌손상이 발생할 경우 회복되지 못하고 끝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또 이러한 증상이 한번 생기면 재발을 잘 하기 때문에 없어졌다가 며칠, 몇 달, 몇 년 후에라도 다시 재발하는 경우도 있다.
노인분들께 섬망이 중요한 이유는 이런 증상이 생기면 그냥 방치해서는 안되며 즉시 응급으로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 속 어딘가에 급히 치료해야 할 어떤 병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섬망의 원인질환은 크게 뇌 자체의 질환과 전신성 질환으로 나눌 수 있는데, 뇌 자체 질환으로는 뇌 손상, 뇌졸중, 뇌염이나 뇌막염 등이 대표적이고, 전신 질환으로는 폐렴, 패혈증, 심한 상기도감염, 요로감염 등의 각종 감염질환, 고혈압 등의 심혈관질환, 전해질장애, 저혈당, 고혈당, 저산소증, 간질환, 콩팥질환, 갑상선질환 등의 대사성 혹은 내분비질환 등이 있으니 사실 온갖 질병이 모두 섬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젊은 사람에서는 매우 드물게 생기지만, 젊은이에게도 생길 수 있는 몇가지 중요한 이유로는 알코올 중독이나 약물남용 또는 마약성 중독약물의 급작스런 중단 등의 경우가 그렇다.
또 하나 노인분들에게 생기는 섬망의 원인 중 중요한 것이 약물과 관련된 섬망인데, 몸에 맞지 않는 약물 부작용으로 생기는 섬망이 전체의 약 40%까지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섬망을 잘 일으키는 가장 흔한 약제로는 수면제를 포함한 일부 정신계통의 약물, 항암제, 마취제, 마약성 진통제 등이다. 그래서 섬망 증상이 생기면 즉시 병원으로 모시고 와서 응급으로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원인을 가능한한 빨리 찾아내어 해결하여야 한다. 원인 확인을 빨리하고 치료를 하면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지만, 치료가 늦으면 늦을수록 섬망증상 치료가 어려워지고 결국 뇌손상이 생겨 치매로 악화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치매증상과의 구별인데, 아시다시피 치매는 아주 서서히 진행하기 때문에 금방 알아차리기가 어렵고 기억력이나 행동변화 등의 증상이 하루 동안에 또는 주야간에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섬망은 급성 정신착란이기 때문에 증상이 갑작스럽게 생기고 변화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주의집중력이 많이 떨어져서 숫자 계산이라든지 요일 거꾸로 외우기 같은 것을 더 못하는 것이 섬망의 특성이다.
섬망증상이 생기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우선, 식사나 목욕, 취침, 운동, 사회활동 등을 포함한 모든 생활을 일정한 계획에 따라 하는 것이 좋다. 둘째, 적절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단 불면증이 의심되면 그냥 넘기지 말고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 한다. 불면증 자체가 간혹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셋째, 일정한 수분섭취와 식사 습관이 중요하다. 노인분들의 경우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삼킴 장애로 인하여 하루 필요량의 수분섭취와 적절한 식사를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이런 경우 탈수 혹은 전해질 장애로 인해서 정신착란이 잘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연세가 드시게 되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에게 발생하는 것이 시각 및 청각장애인데, 이러한 장애들이 정신혼란의 위험요인이 될 수 있어서 이에 대한 교정이 필요하다. 다섯째, 복용 중인 약제들의 부작용으로 이런 증상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약물 부작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일부 수면제나 항우울제 같은 것을 잘 못 사용하면 섬망 증상이 잘 생긴다. 끝으로,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병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혈당이나 혈압이 제대로 조절되지 못할 때나 합병증이 생겼을 때에도 정신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