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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테러에 희생된 베나지르 부토

2007-12-28

뉴스

총리를 두 차례 역임한 바 있는 파키스탄의 대표적 여성 정치인.
파키스탄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여성 파워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였다.
아버지와 함께 대를 이은 파키스탄의 정치 지도자였지만, 역시 대를 이어 횡액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베나지르 부토의 일생

1953년 6월 파키스탄 남부 항구도시 카라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줄피카르 알리 부토. 대통령, 총리 등을 지냈으나 쿠데타로 실각한 후 투옥됐다가 처형됐다.
베나지르 부토는 미국 하버드 대학, 영국 옥스퍼드 대학 등에서 정치학, 철학, 경제학 등을 공부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아버지의 처형과 가택연금 등으로 고난이 시작됐다.
1984년 가택연금이 해제된 후 자신의 아버지가 창당한 파키스탄인민당(PPP) 당수를 맡으면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를 처형했던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당시 군부독재자 무하마드 지아 울 하크에 맞섰다가, 그가 사망한 후 치러진 1988년 총선에서 승리해 이슬람권 최연소 여성 총리에 오른다. 당시 그녀의 나이 35세.
그러나 이듬해 정부가 부패 혐의를 받으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1993년 다시 총리에 올랐지만, 파루크 레가리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로 역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3년 만에 물러났다.
부토는 이후 1999년 자발적 망명길에 오른다.
그러나 불법자금 세탁, 전투기 구매비리 등 부패의 증거들이 계속 나와 망명 생활 내내 오명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인터폴 수배자 명단에까지 올랐다.

부토의 귀국

무샤라프 대통령의 정치적 절충 결과로 귀국길이 열렸다.
정권연장을 기도하던 무샤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당선은 됐으나 자격 시비로 반무샤라프 진영이 지배하는 대법원의 심리를 받게 되자 대법원장을 해임했고, 이로 인해 거센 퇴진 운동에 봉착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총선을 치르고, 여기서 PPP가 승리하면 베나지르 부토와 권력을 분점하겠다는 계획으로 협상을 했고, 이에 따라 부토의 부패혐의 사면조치를 취함으로써 귀국길이 열렸다.
이에 따라 부토는 지난 10월18일 8년 만에 귀국해 1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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