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최종 부도 처리된(2008.9.23) 단성사는 1907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극장이다.
개화기에서 광복 직후까지 극장이 드물었던 시대에 연극과 영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중요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1907년 주승희(朱承熙)의 발의, 안창묵(安昌默)과 이장선(李長善)의 합자로 세워졌다.
최초의 건물은 2층 목조건물.
처음에는 자선공연을 주로 한 탓에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따라 1908년 10월 문을 잠시 닫았다가 재개관하기도 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후지하라(藤原雄太郞)에 넘어갔다가 1918년 박승필(朴承弼)이 인수했다.
초기에는 연극·영화 구분 없이 신파류의 연극과 연속극 같은 영화(영화를 몇 차례로 나눠 상영)를 동시에 무대에 올렸다.
1919년 10월27일 한국 최초로 영화 '의리적 구토'를 상영했다. 1962년 제정된 영화의 날은 바로 이 날을 기념한 것.
1924년에는 한국 최초로 한국인에 의한 극영화 《장화홍련전》이 제작·상영됐고, 1926년에는 나운규(羅雲奎)의 '아리랑'을 상연됐다.
1939년 다시 일본인에게 넘어가 1940년 대륙극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해방 후 단성사란 이름을 되찾았다.
이후 주로 악극이 공연됐으며, 영화관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은 6.25 한국전쟁 이후.
2001년 스크린 11개를 갖추는 대대적인 재건축에 착수해 2004년 시네시티-단성사로 규모와 면모를 일신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