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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안중근 의사

2010-03-26

뉴스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은 26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중앙추념식을 비롯, 전국 곳곳은 물론 미국 뉴욕 등 해외에서도 추모행사가 잇따랐다.(2010.3.26)

안중근 의사

1879.9.2 ~ 1910.3.26
황해도 해주 생.
제국주의 일본의 조선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 통감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사살하고 체포돼 뤼순 감옥에서 처형돼 순국했다.

◆성장

어려서는 한학(漢學)을 배우고, 승마·궁술·사격술 등을 익혔다.
1895년 천주교에 입교, '도마'(토마스)란 세례명을 받았다.

◆항일운동

△망명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난 후 중국으로 건너갔다.
1906년 상하이에 삼흥학교, 돈의학교 등을 세워 민족교육에 헌신했다.
1907년에는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이 돼 본격적인 항일운동을 폈고, 이후 북간도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의병운동에 참가한다.
△항일투쟁
1908년 대한의군참모중장 겸 특파독립대장 및 아령(러시아령)지구 군사령관 직책을 맡아 엄인섭과 함께 의병군을 이끌고 함경북도 경흥까지 쳐들어갔으나 일본군의 앞선 화력을 이기지 못하고 패퇴했다.
패전 후 러시아 노브키에프스크로 탈출, 여기서 1909년 단지회를 조직한다.

◆의거

△단지회
손가락을 잘라 맹세한 데서 나온 이름.
12인으로 구성된 단지회는 한일 합방의 원흉인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조선의 매국노 이완용을 각각 '제거'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조직이었다.
△저격
1909년 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왔다.
하얼빈역 열차 내에서 이뤄진 회담을 마친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장교단 사열에 나섰다.
이때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격을 가해 명중, 사살하는데 성공했다.
△처형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검찰관 예비심문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개인자격이 아닌 대한의군사령관으로서 처형했다"고 천명했다.
이후 일본 관할의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뒤 1910년 3월26일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돼 순국했다.
감옥에서 이토 히로부미 처형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한편 아시아의 평화적인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자신의 이론을 담은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현재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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