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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은 "성리학에 근거해 학자를 양성하고 스승을 섬긴 곳"으로 정의된다.
즉 서원은 각 지방의 유학자들이 성현을 받들고, 유생들을 가르치는 곳이자 집회소였다.
유생들이 모여 해당 지역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질서를 세우는 자치기구 역할도 했다.
말하자면 지방의 사설교육기관 겸 향촌(鄕村)자치운영기구였던 셈이다.
이번에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한국의 서원은 원형이 잘 보존된 9곳이다.
그 중 5곳은 대구•경북 지역에, 나머지 4곳은 경남 전북 전남 충남에 각각 1곳씩 있다.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영주 소수서원이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1543년 세운 최초의 서원이다.
국내 성리학을 도입한 학자 안향을 모신 곳으로 최초의 명칭은 '백운동서원'이었다.
이후 1550년 명종이 '소수서원'이란 현판을 내림으로써 그 명칭이 바뀌었다.
이는 당시 풍기군수였던 초선시대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이황은 성리학 정착과 서원 확산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소수서원은 사상 최초의 서원으로 후대 서원의 표준이 된 셈이다.
교육과 제향에 관한 운영 규정을 처음 만들었다.
교육에 대해서는 강의 횟수, 평가 방식, 입학 관련 사항 등이 규정됐다.
또 제향에 대해서는 그 절차, 참여자와 각 참여자의 역할 등을 정해뒀다.
시설로는 교육 공간인 강당, 선현을 모시는 사당인 '사우', 기숙사인 재사 등을 갖췄다.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서원은 안동 도산서원이다.
지역 사림(士林)이 퇴계 이황이 세운 도산서당을 모체로 그의 사후인 1574년 건립했다.
도산서당은 지금도 강학 공간 전면에 남아있다.
도산서원에는 1575년 선조가 석봉 한호의 글씨로 된 현판을 내렸다.
왕이 현판을 내린 서원은 '사액서원'이라 해서 그 권위가 크게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도산서원은 학파를 이룬 전형적 서원으로 이황의 저술도 출판했다.
강과 평야가 펼쳐진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시와 그림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들 두곳 외에도 경북지역에는 이번에 유산으로 지정된 서원 3곳이 더 있다.
안동 병산서원과 경주 옥산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와 양동마을에 있다.
대구의 대표 서원인 달성 도동서원은 뛰어난 건축미로 유명하다.
경남의 대표 서원인 함양 남계서원은 영주 소수서원보다 9년 늦은 조선의 2번째 서원이다.
지형 조건을 활용해 제향, 강학, 교류, 유식 공간을 나눔으로써 서원 건물 배치의 전형이 됐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을 주도한 곳이란 이유로 왜병이 불태웠으나 17세기 초반 재건됐다.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은 마을의 교육광간이던 '흥학당'이 서원으로 발전한 독특한 사례다.
전남 장성 필암서원도 임진왜란 당시 불탔다가 재건된 곳이다.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은 이번에 등재된 9곳 중 가장 조성시기가 늦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