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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시대의 가족 제도

2014-04-26

조선시대의 대가족 제도와 달리 고려시대에는 현대와 같은 소가족 제도가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다소 획기적인 사실로 여겨지는 고려시대의 가족제도에 대해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알아본다.

고려시대의 묘지명에 나타난 가족제도
고려시대의 가족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이 최근에 발굴된 368 개의 묘지명에 나타나고 있다.
그 중 220개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려시대는 부부 중심의 사회였고 3~4 명 정도의 자녀들과 함께 생활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형적인 현대의 핵가족과 같다. 조선시대의 대가족제도와는 상당히 다르다. 또 1부1처제도 고려의 가족제도의 특징이다.

일부다처제 주장에 대한 비난
고려 충렬왕 때 박유가 쓴 기록에는 고려사회에서도 일부다처제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남자들이 여러 명의 첩을 거느려 인구를 늘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기록들을 종합하면 이런 박유의 주장에 대해 당시 여성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결국 박유의 주장에 대한 강한 반발 기록 등을 종합해볼 때 고려 시대에는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았고 여성들의 위상도 상당히 강화된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남녀 동등하게 상속
대가족제도가 이뤄지는 배경 중의 하나는 재산 상속이 주로 장자에게만 이뤄지는 사회에서는 모든 상속을 못 받은 자녀들이 장자의 집에서 함께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상속이 남녀 동등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핵가족이 가능했다는 분석이 있다. 또 남자가 결혼하면 한동안 처가에 사는 풍속 또한 여성의 권위를 높이고 핵가족 제도를 정착시킨 배경으로 보고 있다. 상속을 동등하게 받고 또 남자가 처가에 살면서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진 것이 고려시대의 핵가족이 유지된 중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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