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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시대의 평민

2014-08-09

어느 시대나 대다수의 많은 국민들의 생활상이 한 나라의 경제 수준, 행복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고려시대에는 오늘날 백성이나 민중에 해당하는 ‘民’ 들의 생활이 어떠했을까?
국민대 국사학과 박종기 교수와 함께 고려시대의 ‘평민’에 관한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20세기 이후의 ‘민중’개념과 달라최근에는 일반적인 국민들을 ‘민중’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만중’이란 개념은 20세기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가 해방되면서 생긴 용어로 ‘민중’속에는 학생, 지식인들도 포함된 개념이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민’의 개념과는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평민’은 ‘백정(白丁)고려시대 평민은 ‘백정’이다. 오늘날 ‘백정’이라고 하면 도살하는 천민층을 떠올리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의 개념이다.
고려시대의 백정은 특정하게 국가에서 부여한 직위가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국가에서 주는 땅를 경작하지 않고 개인 소유나 남의 땅을 빌려 경작하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평민들에 해당한다.

국가가 정해준 일을 하는 ‘잡척층(雜尺層)백정 밑의 층에는 잡척층이 있는데 이들은 향,소, 부곡 등 작은 마을에 거주하며 국가가 정해준 수공업이나 경작을 하여 국가에 바치는 일을 했다. 백정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았다. 이렇듯 고려시대의 ‘민’은 ‘백정’과 ‘잡척층’ 등 다양한 층으로 구성됐는데 대부분 나라에 조세, 수확물 등을 바치고 나면 그들은 매우 궁핍한 삶을 영위했다.

국가에 바치고 나면 본인들의 생활은 곤궁역사학자들의 추정을 보면, 고려시대 4~5명의 소가족 단위가 소유한 평균 농지는 1결이다. 1결은 1200평, 6마지기에 해당한다.
이 1결의 농지에서 수확하는 평균량은 18석이다.
그런데 한 가정이 1년에 국가에 바치는 조세, 최저 생계를 위한 식량은 18.4석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늘 곤궁하고 어려운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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