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씨름> <서당> <무동> <고기잡이> <대장간> 같은 풍속화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29살에 영조의 어진(御眞, 임금의 초상화)과 훗날 정조가 되는 왕세자의 초상을 그린 궁중화가이기도 했다. 7~8살 무렵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스승 강세황의 추천으로 도화서(圖畫署, 궁정에서 그림을 담당하는 기관)의 화원이 되었는데, 세속을 떠난 신선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담은 신선도(神仙圖), 문인들의 풍류와 정신세계를 담은 문인화(文人畵),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처럼 호랑이의 무수한 터럭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살려낸 세밀화, 심지어 사찰의 탱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림에서 뛰어났던 인물이다.
당대 그와 교류했던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김홍도는 인물이 수려하고 정신이 깨끗하여 세속을 초월한 신선 같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림뿐만 아니라 음악가로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작품 중 자화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포의풍류도>에는 생황을 앞에 두고 비파를 안고 있는 선비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단원도>에는 거문고를 타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그의 퉁소 연주를 직접 들었던 성대중은 ‘그 곡조가 소리는 맑고 가락은 높아 위로 숲의 꼭대기까지 울리는데, 뭇 자연의 소리가 모두 숨죽이고 여운이 날아 오를듯하여 멀리 이를 들으면 반드시 신선이 학을 타고 생황 불며 내려오는 것이라 할 만 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오늘의 선곡
1. 대풍류 중 염불타령 – 대금 박용호, 해금 김영재 등
2. 영산회상 중 중령산 1,2 장 – 거문고 이세환, 대금 황규일
3. 영산회상 중 타령 – 김중섭 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