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날 생각하는 선각자
11월 3일은 한국 만화의 부흥과 만화인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지정한 ‘만화의 날’이었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만화의 날’.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 3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한국 만화의 새로운 100년을 기약했는데, 이 땅에서 처음 만화를 그린 이는 누구일까?
한국 만화의 탄생
한국 만화의 효시는 1909년 6월 2일 창간된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삽화’(揷畫)라는 이름의 1칸 만화다.
서양식 양복을 입은 신사가 입에서 大(대), 韓(한), 民(민), 報(보)라는 앞 글자로 시작되는 사행시를 뿜어내는 이 그림은 정세를 잘 살피고, 민족의 정신을 하나로 모이게 하고, 백성의 소리를 들으며 소식을 잘 알리는 신문의 바른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 시사만화로 한국 만화 최초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는데, 이 그림을 그린 이는 관재(貫齋) 이도영(李道榮)이었다.
사실 이도영은 만화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1884년, 집안 대대로 좌의정과 대제학을 거친 명문가에서 태어난 이도영은 18세 때 당대 최고의 화가들인 안중식(安中植), 조석진(趙錫晋)의 문하생으로 전통 한국 화법을 익혔다.
특히 안중식의 화풍을 주로 이어받아 인물·영모(翎毛)·기명절지(器皿折枝)의 화제(畫題)에서 온건하고 자유로운 필력을 발휘했는데, 전통 화가의 길을 걷던 이도영이 시사 만화가로 나서게 된 데는 오세창(吳世昌)의 역할이 컸다.
풍자로 그려낸 저항의 시대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자 뛰어난 서예가로 서화(書畵) 감식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던 오세창은 1902년 개화당(開化黨) 역모 사건에 휘말려 일본에 망명하였다가, 그 곳에서 천도교의 교주 손병희(孫秉熙)를 만나 독립운동에 새롭게 눈을 떴다.
일본에서 4년 동안 머문 뒤 1906년 귀국한 오세창은 그 해 손병희가 창간한 일간 신문 '만세보(萬歲報)'의 사장이 되어 나라 빚 갚기 운동(국채보상운동) 등을 벌였고, 1909년 대한협회의 신문인 '대한민보'가 창간되자, 다시 사장에 취임해 민족자강운동을 전개했는데, 이 때 오세창이 평소 존경하던 두 화백, 안중식과 조석진의 수제자인 이도영에게 획기적인 시사만화를 부탁한 것이다.
이 때부터 이도영은 1910년 8월 31일 <대한민보>가 강제 폐간될 때까지 목판화 만화를 통해 항일 구국정신을 고취시키는 작품을 발표하며 독자들에게 국가의 위기 상황과 망국적인 사회 병리의 실태를 알리고, 일제와 친일파를 풍자했다.
다시 전통 화단으로
하지만 1910년,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한 한일합병조약 이후 다시 수묵화의 세계로 돌아온 이도영은 1911년, 은사 조석진과 안중식이 중심이 된 서화미술회(書畫美術會) 강습소에서 그림 전공의 학생들을 지도하고 1918년에는 동년배의 화우였던 동경미술학교 서양학과 출신 고희동(高羲東)이 앞장서서 서화협회(書畫協會) 조직에 나서자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며 서화협회를 이끌었다.
작품 활동도 활발해 1921년, 첫 서화협회전람회를 개최함과 동시에 <서화협회회보(書畫協會會報)>에 ‘동양화의 연원(淵源)’과 ‘동양화의 강구(講究)’를 연재물로 집필했는데, 한국 화단에서 역량을 발휘했던 이도영은 1933년, 5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한국 만화 100년의 길을 열다
한국 최초의 만화가, 이도영의 삶은 그렇게 끝났지만 한국 만화는 이후 본격적인 성장의 길을 걸어갔다.
19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되면서 이들 신문은 시사풍자만화 등을 연재하는 한편 독자들의 풍자만화를 소개했고, 1924년 동양화가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이 연재한 4칸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는 큰 인기를 얻으며 만화로는 처음으로 영화로 각색됐다.
8·15 광복 이후 신문 잡지 컷 정도의 단편 시대를 넘어 페이지 만화(장편만화) 시대를 맞은 한국 만화는 1960년대 이후, 신동우, 고우영, 김원빈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한국적인 만화를 모색하며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1980~1990년대에는 이현세, 이두호, 허영만, 김수정, 황미나, 신일숙 등 역량 있는 신진 만화가들이 대거 등단해 다양한 장르를 개척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 2000년대에는 강풀 등 온라인 만화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며 한국 만화의 발전을 이끌고 있으니 이 유장한 역사는 한국 만화의 개척자, 이도영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