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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 - 양귀자

#라디오 책방 l 2022-08-02

라디오 책방

ⓒ Getty Images Bank

형제슈퍼가 느닷없이 쌀과 연탄을 벌여놓고

빨간 페인트로 ‘쌀, 연탄’이라고 쓴 어엿한 입간판까지 내다 놓은 것은

누가 뭐래도 김포슈퍼의 개업과 발을 맞춘 것임이 분명하였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형제슈퍼와 김포슈퍼의 간격이

백 미터도 채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김포에서 쌀과 연탄만을 취급했을 때는 

모두 김반장의 형제슈퍼에서 물건을 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김포슈퍼와 형제슈퍼가 공방전을 사이,

새해 들어 빈 상가주택에 ‘싱싱청과물’이란 간판이 걸렸습니다.

싱싱청과물은 김포슈퍼와 형제슈퍼 딱 가운데 지점이었는데요,

과일만 파는 게 아니라

‘부식 일절 가게 안에 있음’이란 종이쪽지까지 써 붙였습니다.


웃음 많던 김포슈퍼 경호 엄마 얼굴에도 시름이 가득하고,

형제슈퍼 김반장도 술이 늘었습니다.

거기다 싱싱청과물에서 취급하는 품목에 대해

김포슈퍼와 형제슈퍼는 가격을 대폭 낮췄습니다.

그러자 싱싱청과물 주인이 부식일절 운운한 쪽지를 거둬들였습니다.

과일만 팔겠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형제슈퍼의 김반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 인터뷰. 전소영 문학평론가

작품의 제목이 일용할 양식인데 제목이 내용을 잘 압축해서 담고 있습니다. 김포슈퍼와 형제슈퍼는 계속 할인 경쟁을 하다가 이방인인 싱싱청과물이 개입을 하니까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을 해서 그를 몰아냅니다. 주민들은 김반장이나 경호네를 비판하기도 하고 또 싱싱청과물을 동정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이 세 가게가 출혈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혜택을 많이 누렸죠. 이 과정이 가볍게 유쾌하게 그려져 있는데 사실 그 이면에 놓여있는 당대 현실은 굉장히 절박하고 슬픈 것이었어요. 싱싱청과물의 주인은 이 원미동에서 마저 밀려나서 어디로 갔을까요? 서울로는 들어갈 수 없으니까 먼 곳으로 밀려났을 거예요. 그렇다고 또 원미동 사람들을 전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 역시도 원미동이 살아갈 마지막 장소, 마지막 보루였으니까요. 즉 작중에 등장하는 모두는 호사스러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매일매일 먹고 살기 위해서 악다구니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왜들 이렇게 장삿길로만 빠지는지 몰라”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그렇지요” 


우리 정육점 여자의 우문에 새댁이 즉각 현명한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잠시 말이 끊겼다.

매일매일을 살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원미동 여자들 모두는 각자 심란한 표정이었다.

그 중에서도 시내엄마가 가장 울상이었다.

지물포집 막둥이가 넘어졌는지 앙앙 울어대는 것을 신호로 여자들은 제각각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빈자리에는 이른 봄볕만 엄청 푸졌다.




작가 양귀자 (전라북도 전주 1955.07.17~  ) 

    - 등단 : 1978년 문학사상 [다시 시작하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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