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Go Top

문화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 박완서

#라디오 책방 l 2022-01-04

라디오 책방

ⓒ Getty Images Bank

우리 집 오동나무 이층장 위칸에는 남자 모자가 여덟 개나 들어 있다.

아래 칸은 비어 있다.

그 장 위에는 한 남자의 독사진이 놓여 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여덟 개나 되는 모자는 다 그의 죽음을 앞 둔

마지막 일 년 동안에 사 모은 것이다.


모자가 유행하는 시대도 아닌데, 일 년 동안 모자를 여덟 개 씩이나 사다니,

누가 들으면 그가 몸치장 따위에 취미가 각별한 

멋쟁이 신사였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전혀 아니다.


나는 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단 한 가지도 값나가는 게 없을까 

놀라고 민망해한 적이 있다.



# 인터뷰. 방민호 문학평론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남편과 결혼할 시절, 그때는 6.25 전쟁이 아직 채 끝나지도 않았을 그 무렵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물품이 외국에서 들어오는 것인데 아주 멋진 모자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자기의 한 달치 월급, 이것만은 식구들의 생활비로 내놓지를 않고 모자 하나를 사주는데 정말 좋은 모자를 사줬다는 거죠. 자기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죠, 모자를 통해서. 그래서 작품 속에서 모자는 남편과의 애틋한 사랑, 떼어낼 수 없는 정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선택한 인간다운 최선은 

가장 아까운 시간을 보통처럼 구는 거였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에게 순간순간 열중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일 년은 참으로 아까운 시절이었다.

죽을 날을 정해놓은 사람과의 나날의 아까움을 

무엇에 비길까.


세월의 흐름이 빠른 물살처럼 느껴지고

자주자주 시간이 빛났다.

아까운 시간의 빛남은 행복하고는 달랐다.

여덟 개의 모자에는 그 빛나는 시간의 추억이 있다.


나만이 아는.       




작가 박완서  (1931.10.20. 경기도 ~ 2011.01.22)

    - 등단 : 1970. 소설 [나목]  

Close

우리 사이트는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쿠키와 다른 기술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계속 이용함으로써 당신은 이 기술들의 사용과 우리의 정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