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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말하는 돌 - 문순태

#라디오 책방 l 2019-04-30

라디오 책방

ⓒ Getty Images Bank

- 방송내용 중 일부 -


아버지는 부면장네 머슴이었다.

내 생각에 월곡리 안통에서 아버지만큼 키가 크고

힘이 센 남자는 없을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아버지의 나뭇짐을 따를 수 없었다고들 했었다. 

나도 커서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마을에서 가장 큰 나뭇짐을 지게 되기를 빌었다. 



그는 어릴 때 부면장네 사랑채 쇠죽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단단한 팔뚝을 가진 아버지처럼 힘센 머슴이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거렁뱅이가 되더라도 도회지로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얘기 때문에

그는 열 살이 되는 것이 죽기만큼이나 무서웠습니다.


그 해, 마을 앞 신작로에 수많은 탱크들이 지나갔습니다.



그 날 밤에 대밭에 굴을 파고 숨어 있었던 부면장 부자와 월곡리 이장이

까치산 참나무 숲에 끌려가 대창에 죽음을 당했다.

마을 사람들은 한밤중에 참나무숲에서 들려오는 하늘을 찢어발기는 듯한 비명소리를 들었다.


새벽녘에야 대창을 들지 않고 

휘주근하게 기운이 빠져 돌아온 아버지는

두엄자리 옆 닭의 벼슬 모양으로 빨간 맨드라미 꽃밭 위에

털썩 주저앉더니 두 발로 땅을 찍어 차며 통곡을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부면장 어른과 그의 늙은 아버지를 누가 죽였느냐고 물어봤지만

아버지는 대답 대신 괴로운 얼굴로 격렬하게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인터뷰  :   전소영 문학평론가  

이 소설 속에서 아버지의 누명, 그리고 죽음이라는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권력계층이 아니라 민중의 시각에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분단, 그리고 6.25를 거치면서 이념에 대립이 굉장히 심각해졌죠. 그런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본 존재들은 이념이라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르는 순진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월곡리 사람들도 바로 그런 존재들이었는데, 자기 식구를 위해서, 목숨을 위해 타인에게 죄를 덮어 씌우거나, 이웃을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그 참혹한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이들이 다른 선택을 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이렇게까지 몰아간 세상이 더 큰 문제였으니까요.




작가 문순태 ( 1941.3.15.~ 전남 담양군)

: 데뷔-1974.<한국문학>에 소설 [백제의 미소]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수상- 2010, 제7회 채만식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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