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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개구리 - 김성한

2023-06-27

ⓒ Getty Images Bank

한나절을 물 속에서 개구리 사냥을 하고 나서 

황새는 육지에 올라 쌓아놓은 개구리 시체로 점심을 먹기 시작하였다.


양껏 먹고 트림을 하면서 황새는 먹다 남은 개구리 다리를 홱 던져 

얼룩이더러 먹으라고 하였다.

약간 망설이다가 배고픈 김에 한 입 물어뜯어 보았다.


얼룩이는 깜짝 놀랐다.

동족 개구리의 고기가 이처럼 맛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순식간에 다리 하나를 먹어 버리고 황새의 눈치를 살폈다.

이 쪽을 노려보고 있던 황새는 픽 웃으면서 발톱으로 엉덩이 살을 뜯어 던졌다.

기름기 있고 몽실몽실한 것이 참으로 맛이 있었다.

똥구멍은 약간 구리기는 하였으나 눈을 꼭 감고 삼켜 버렸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너, 검둥개구리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 


“저와 같이 거멓게 뵈는뎁쇼” 


“저 아래 널리 퍼져 사는 사람이라는 동물이 있는데

그 동물들의 눈에는 내가 사람 모양으로 보인단 말이다.


그러기에 그자들은 자기들과 꼭 같은 꼬락서니를 한 대리석상을 신전에 모시고 굽신거린다.

소는 소, 개는 개의 제우스를 가지고 있으니 내 어찌 유일자일 수 있겠느냐.

결국 나는 없는 것이다. 너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스스로 만든 것을 부술 수 있고 때릴 수 있고

또 잡아먹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 



# 인터뷰. 전소영

이 개구리는 <제우스의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습니다. 이 작품은 제우스의 입을 빌려서 인간이 욕망에 눈이 멀어서 이데올로기라든지 권력이라든지 신이라든지 이런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이라는 것은 1950년대 전쟁이라는 비극을 일으켰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또 그것을 내세워서 민중을 희생시키고 억압하는 권력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의식으로 신과 같은 우상들을 만들어 내고 노예 되기를 자청하면서 삶의 고통이 시작된다는 것이에요. 그런 것들이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억압할 수 있는데 인간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런 우상숭배가 무가치하다는 것, 또 자유가 소중하다는 것을 제우스의 실종을 통해서 작가가 전하고 있는 것이죠.



제우스는 땅을 구르며 버럭 일어섰다.


“두 개구리는 일어서라.

 그리고 나한테 침을 뱉고 물어뜯어라” 


두 개구리는 주춤했지만 신의 위세에 눌려 반사적으로 돌진해 침을 뱉고 물어뜯었다.


숨을 돌렸다. 크게 눈을 한 번 깜빡이고 나서 초록이는 앞을 응시하였다.


제우스도 신전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돌맹이가 있을 뿐이다.

천지는 아무 변함없고 무관심하였다.


도달할 끝이 없는 망망한 하늘 아래 시초도 종말도 없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초록이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작가 김성한 (함경남도 풍산, 1919.01.17.~2010.09.06)

    - 등단 : 1950년 단편 [무명로(無明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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