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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황하는 뱃사람-유연희

2023-07-18

ⓒ Getty Images Bank
세월호 사건 이후 나이 많은 선원을 기피하자,
중앙동 바닥엔 똥배라도 타려는 선원이 득실거렸다.

똥배도 감지덕지하는 늙은 선원, ‘강’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래저래 바다에서 연륜이 쌓일수록 강은 질기고 독해지는 것 같다.
자신이 죽으면 한 움큼의 독이 나오리라.
등대를 찾아 이리 속을 태우니 이게 간에 독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긴 투구게는 독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투구게의 진귀한 푸른 피는 해독제의 주요 성분이라 했다.
4억여 년 전부터 살아남은 투구게의 생존력은 귀한 대접을 받지만
늙은 뱃사람의 몸에서 나온 독은 쓰레기, 불순물일 뿐이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저도 일개 개인으로 거대 원전 세력과 맞서고 있습니다.
그 원동력은 아버지에게 배웠습니다.
내가 재수할 때 아버지는 투구게 얘기를 들려주셨지요.

투구게는 4억 390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존자 중 하나라고 하셨지요.
가장 위대한 생존자는 긴 시간을 견디는 DNA이다.
재수나 삼수에 연연하지 마라,
투구게에 비하면 얼마나 짧은 시간인가, 길게 보라고 하셨습니다.

투구게처럼 단순하게 밀고 나가는 건 아버지에게 배웠습니다.
새벽도 깊은 밤도 없는 바다를 아버지는 항해중이십니다.
이 못난 아들 때문에요.


# 인터뷰. 전소영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강은 아들의 편지를 받고 무모해 보였던 행동이 아들의 행동이 결국 바다와 자기 삶을 지켜주려 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과 아들의 가치관과 행동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아들도 결국 서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둘은 이렇게 암암리에 화해를 하고요. 강과 그의 배도 언젠가는 이 자욱한 안개를 벗어나 육지에 다 다를 것이라고 기대를 하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묵묵히 밀고 나가며 긴 시간을 견디는 투구게가 바다에 가장 위대한 생존자이 듯 강도, 아들도 마치 투구게와 같은 인내를 앞세워 각자 자기 앞에 안개를 뚫고 나갈 테니까요.


강은 조타수가 손짓하는 하늘을 본다.
농담이 고르지 않은 창공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도 같다.
청회색 하늘에 비닐봉지 같은 것이 떨어질 듯하더니 도로 비상한다.

“갈매기예요, 괭이 갈매기
가까이 등대가 있나봐요. ” 

강은 그에게 쌍안경을 받아 허공을 살핀다.
히끗한 대기 중에 뭔가 움직이기는 한다.
하지만 아니다.
요동하는 것은 물체가 아니라 들썩이는 기류, 움직이는 대기이다.

뱃고동이 대기를 흔들며 뱃사람의 길을 헤집는다.



작가 유연희(경상북도 부산, 1956. ~)
    - 등단 : 2000년 단편소설 [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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