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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작은 방주들-신주희

2023-07-25

ⓒ Getty Images Bank

“꽃이 있다고 치자고. 꽃이 있어서 벌도 있고 나비도 있다고.
 꽃도 일을 하고 벌도, 나비도 제 일을 하고.
 새벽에 나가서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치자고.
 근데, 꿀은? 여전히 꿀은 벌도, 나비 차지도 아니지 않나?
 그럼 그 꿀은 어디로 가는데?”

“은재님! 꿀이 가긴 어딜 가요.  양봉업자에게 가겠죠.” 

허니 쿠키가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낯선 질문들이 입속을 맴돌았다.
뭐가 있다고 치는 것, 없는데 있다고 치는 것, 
치자, 치자, 치자, 중얼거리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거짓말도 치는 거고, 사기도 치는 거고, 뒤통수도 치는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진주가 자꾸 우유니로 오라고 하네” 

엉겁결에 나온 거짓말에 허니쿠키는 호들갑을 떨며 부러워했고
질투와 아쉬움이 역력한 그 얼굴을 보면서
은재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쉬는 걸 고려하고 계신다면서요?” 

“네? 제가요?”

“해외로 가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친구 분이 우유니에 자리를 잡으셨다면서요? 
결정 잘하신 것 같아요. 뭐니뭐니 해도 자리 사업이 최고잖아요.”

허니 쿠키는 은재가 곧 우유니에 간다며 떠들고 다닌 겁니다.
등 떠밀리듯 사표를 낸 은재는 우유니로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 인터뷰. 전소영
은재는 소금사막에서 한 모자를 만납니다. 여자는 소금 캐는 일을 하는데,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불안 때문에 생기는 헛된 욕심이나 사회에서 도태되면서 겪는 모멸감 그리고 타인을 희생시켰다는 죄책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땀 흘려 노력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얻으며 살아가는 건강함, 순수함, 은재는 그 여자로부터 자신이 가지지 못한 바로 그것을 느끼고 눈물을 흘립니다. 또 은재는 그들의 사진을 진주와 허니 쿠키에게 보여주겠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요. 이것은 은재가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에 굴하지 않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키면서 살겠다는 뜻으로도 보입니다.


여자 앞에 자리를 잡은 아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페달을 밟자 의심 없이 느껴지는 소금의 무게가 묵직하게 여자의 발에 실렸다.
여자는 석양을 등지고 사막 저편으로 멀어졌다.

마음 속에 소용돌이치는 말들 중 어떤 것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길게 늘어지는 여자의 그림자를 사진 속에 담았다.
말 대신 꼭 보여주고 싶었다.
진주에게 그리고 허니 쿠키에게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걸음을 멈추고 끝 너머로 눈을 돌리는 것,
그게 최후에는 꼭 자기 자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작가 신주희(서울, 1977.~)
    - 등단 : 2012년 단편 소설 [점심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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