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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름다운 노을 - 백신애

2023-09-26

ⓒ Getty Images Bank
그 소년은 내가 그림 붓을 든 후 오늘까지 머릿속에 그리고, 그리고 해오던 
나의 이상의 얼굴이었어요.
나는 항상 지극히 온순하고, 지극히 아름다우며
끝없이 침착하고 점잖으며 그리고 맑고 순결하고 화기를 띠운 얼굴을
단 한 폭 내 전생을 통하여 그려보려고 욕망하여 왔던 거랍니다.
나는 길을 갈 때나 전차를 탈 때나
사람들의 얼굴만 유심히 살펴왔습니다.
다른 아무 생각도 없었어요.
단지 그러한 얼굴을 꼭 한번 그려보리라는 그 결심뿐이었어요.

- 방송 내용 중 일부 


내 아들보다 단 세 살밖에 차이가 없는 소년 정규,
아니 그보다도 그의 형과 약혼설이 진행 중에 있는 사이에
그에게 내 자는 얼굴이 행여 더러웠을까 염려되어
거울 앞에 부리나케 달려가던 그 마음을 가지고
내 어이 아들 석주를 보랴 하는 괴로움에 내 눈은 어두워졌어요. 


# 인터뷰. 전소영
순이가 32살, 정규가 19살이라는 점. 또 정규가 순희의 시동생이 될지도 모르는 인물이라는 점. 게다가 아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 이 작품의 설정들을 보면 둘의 관계가 굉장히 위태로워 보이죠. 그런데 왜 작가는 이들을 이렇게 위태로운 사이로 그려냈을까? 이것은 사회적 금기와 욕망이 부딪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백신애의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작중에도 드러나 있지만 사실 일제강점기 여성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사회적인 금기와 부딪쳐야만 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 당시 여성들의 삶을 순희라는 인물의 극적인 상황을 통해 보여주는데요. 특히 아주 생생한 심리묘사를 활용해서 당시 여성들이 겪었던 좌절과 비애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게 합니다.


저 역시 내 삶이 귀한 줄 압니다.
나는 항상 내 손가락 하나를 희생하여 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선뜻 내어주지 못할 만치 내 몸을 중히 여겼어요.
그렇지만, 그렇지마는 이제는 내 그 귀한 생명을 바쳐서라도 
그 소년을 위하려는 거랍니다.
내 마음이 이러한 결심을 하게 되는 날부터 행복했고,
위로받을 수가 있고 해결이 되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 소년을 위하여 생명을 던지리라는 것이었어요.
이제는 흐르는 눈물도 행복된 것 같고
괴로운 환영도 나에게 즐거운 듯합니다. 



작가 백신애 (경상북도 영천, 1908.05.19.~1939.06.25)
    - 등단 : 1928년 단편소설[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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