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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 이경

2023-11-07

ⓒ Getty Images Bank
느닷없이 눈물이 왈칵 솟았다.
엄마는 위대하다고들 하지 않았나?
하지만 임신에서부터 출산, 육아까지 14개월만에 
나는 세상에서 제일 멍청이가 되어버렸다.
눈물과 콧물이 콸콸 흘러내려 머리카락과 베개를 다 적시게 내버려두고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꺼진 화면을 터치하자 심해 같던 방구석이 다시 희미하게 커졌다.
화면의 가장 구석에 오렌지색 유모차 아이콘을 폭 감싸 안은
월계수 가지 두 개가 둥둥 떠다녔다.
나는 남은 콧물을 힘차게 들이키고 황새영아송영 앱을 열었다. 

- 방송 내용 중 일부 


“우리와 연결된 센서를 통해 불쾌감이나 통증 같은 신체적 원인은 
 비교적 정확히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어요.
 기저귀를 갈아주고 수유를 하거나,
 반짝거리고 소리 나는 것으로 주의를 끌고
 여러 놀 것과 볼 것을 흥미가 당길 때까지 바꿔 보여주기도 하죠.
 유모차와 유사한 진동을 전해 줄 수도 있고요.” 

조용조용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와 상냥한 어조,
귀를 살짝 덮은 길이로 다듬은 하얗게 센 머리카락, 탄력있는 피부,
섬세한 이목구비, 눈가와 입가를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깊거나 얕은 주름들.
직원의 얼굴은 놀랍게도 일찍 돌아가신
나의 외할머니와 많이 닮아 보였다.
주름이 표시하는 나이와 어긋난 매끈한 피부나,
작은 쌍둥이 행성처럼 발광하고 있는 오렌지색 눈이 아니라면 말이다.


# 인터뷰. 전소영
유럽 문화권에는 창조의 바다에서 황새가 아이를 물어다 준다라는 전설이 있는데요. 이 작품에서는 그 전설을 모티브 삼아서 ‘황새영아송영시스템’이라는 가상의 이동수단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상상력이 상당히 흥미로운데 그 상상력의 이면에는 서글픈 현대 사회의 문제가 가로 놓여 있습니다. 바로 아이에 대한 양육이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주인공 혜인은 맞벌이부부로 살아가는 와중에 아이를 낳았는데 회사에 눈치를 보느라 휴가도 못 쓰고, 엄마에게 편중되어 있는 양육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죠.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그 모습이 현대사회의 많은 젊은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야흐로 AI의 시대가 도래를 하면서 육아 분야에서도 AI를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요. AI서비스를 처음에는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해인이 황새 안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이 모습이 참 서글퍼 보입니다.


 “영유아의 편안하고 안전한 이동을 도와드리는 <황새>에 이어
 내년에는 가정에서의 안전하고 즐거운 영유아 육아를 도와드리는
 <펭귄> 서비스가 출시될 예정이에요.
 저희가 마침 어제부터 베타서비스 체험자를 모집 중인데,
 혜인님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신청해 보시겠어요?
 물론 베타서비스 기간 동안 이용요금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브로슈어의 앙증맞은 펭귄 일러스트는
조심성 없이 꾹 말아 쥔 내 손 안에서도 웃음을 잃지않고
조그만 오렌지색 부리를 빠끔대며 낭랑하게 지저귀었다.



작가 이경 (강원도 강릉, 1984년~)
- 등단 : 2022년 단편소설 [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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